길 위의 삶과 풍경을 인간치유의 정서로 승화

언론인으로, 여행 작가로 분주하게 살아온 이호준 시인이 「티그리스강에는 샤가 산다」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천년의 시작’에서 펴냈다. 시집 목차만 훑어보아도 이 시집의 색깔과 질감을 짐작할 수 있다. ‘갈매기 태양까지 날다’, ‘바다로 간 길’, ‘레닌, 여행을 꿈꾸다’, ‘오로라를 오리다’, ‘자작나무’, ‘밤바다에 들다’, ‘산사의 아침’, ‘거룻배가 있는 풍경’, ‘단풍 들다, 단풍 지다’, ‘그리움의 실체’, ‘홍매(紅梅) 피다’, ‘감나무의 조문’, ‘수몰지에 내리는 비’, ‘3월에 내리는 저 눈’, ‘홍시 먹는 아침’, ‘매화 피는 새벽’, ‘고등어 굽는 저녁’ 등 시인이 국내외 여행길을 떠돌며 길 위에서 만나는 자연과 향토적 풍경을 인간 치유의 정서로 치환해 시로 승화시키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티그리스강에는 작은 물고기 샤가 산다 그리고

먼 옛날, 대상(隊商)들이 길을 부려놓던 하산케이프에는

늙은 어부 알리 씨가 산다

어부는 자동차 타이어로 엮은 보트를 끌고

아침마다 조심스레 안개의 빗장을 연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부자라고 믿는 그의 전 재산은

보트 하나와 낡은 그물

샤를 잡아서 버는 돈은 하루 2,000원 남짓

아내에게 가져갈 빵과 바꾸기에도 부족할 때가 많지만

쿨럭쿨럭 잔기침 품고 흐르는 강 위에

날마다 보트를 띄운다

 

- ‘티그리스강에는 샤가 산다’ 중에서

 

이호준시인 첫시집 표지와 이외수 소설가 추천사

 

시인이 여행길에 만난 어부의 모습은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을 닮았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부자라고 믿는 그의 전 재산은/보트 하나와 낡은 그물/샤를 잡아서 버는 돈은 하루 2,000원 남짓”이지만 늙은 어부의 삶은 안분지족과 자연이 주는 공간에 기쁨과 희망의 삶을 산다.

“아내에게 가져갈 빵과 바꾸기에도 부족할 때가 많지만/쿨럭쿨럭 잔기침 품고 흐르는 강 위에/날마다 보트를 띄운다”라는 대목에서 시공간의 풍경은 달라도 우리네 오지와 외딴 섬사람들의 하루의 일생을 맞닿아 있다. 시인의 눈길 역시 그런 삶의 동질감에 절여 있기 때문이다. 어부는 가장이고 들쳐 맨 그물의 무게에 따라 어판장이나 오일장에 내다 팔아야 할 경제적 삶의 무게는 매번 다르지만, “쿨럭쿨럭 잔기침 품고 흐르는” 세월의 강물에 혹은 그 바다에 내 삶을 내다바치며 살아간다. 그 공간은 이녁의 삶과 희망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시집의 해설을 쓴 정한용 시인은 “우리는 시인의 의식 밑바닥에는 그리움이 가득하고, 그것이 모두 사랑이며 동시에 슬픔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조차 슬프다고 하는 것은, 이호준의 시와 산문을 나누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라고 평했다.

표지에 실린 추천사를 쓴 이외수 소설가는 “그의 시들은 여행자로서의 성찰과 깨달음이 은밀하게 발효되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보여준다면서 “비포장도로를 절름거리면서 걸어와 눈물로 건져 올린 시들은 절대로 절규하거나 통곡하지 않습니다. 도처에 능청과 해학이 번뜩거립니다. 그의 시들은 여행자로서의 성찰과 깨달음이 은밀하게 발효되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보여 줍니다.”라고 평가했다.

이호준 시인은 서문 격인 ‘시인의 말’에서 “숱한 배가 드나드는 선창에 머물렀다. 목선에서 작은 물고기를 내리는 일이 내 몫이었다. 어느덧 내게도 돛 올리는 날이 왔다. 바람을 쫓아가는 아침마다 기도했다. 웃다가 울게 만드는 물고기 한 마리 잡게 해달라고. 꿈은 반쯤 이뤘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물에 물고기가 들 때마다, 그게 시(詩)이길 꿈꾼다.”라고 고백했다.

길 뜬 여행의 삶을 사는 이호준 시인은 “꿈은 반쯤 이뤘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삶은 반쯤 비워내고 반쯤의 여백이 있어야 아름답다. 반반의 삶을 사는 일은 진정한 여행자만이 가능한 심성이고 그 사유의 깊이는 궁극적으로 삶과 자연을 바라보는 경지에 이른다. 그래서 이호준 시인에게 비워 있는 그것은 시(詩)로 발화하고 삶과 사유를 농익게 만든다. 그런 시인이기에 “그물에 물고기가 들 때마다, 그게 시(詩)이길 꿈꾼다.”라고 말할 수 있는 행복과 자존감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인생은 여행길이다. 여행은 곧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방랑자이고 여행 철학자이다. 그래서 진정한 여행자는 여행 그 자체를 삶의 처음과 끝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자에게 여행길은 일종의 경배와 해탈의 여정이다. “길은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거나, 어딘가로 향해 길은 뻗어있지만 어디쯤에서 끝날지 알 수 없는 길 위에 시인은 서있다.”라는 평가가 가능한 이유다.

이호준 시인은 충남 홍성에서 출생해 <서울신문> 뉴미디어국장을 지냈다. 시인은 2013년 <시와 경계>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전에 산문집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기행에세이집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 「문명의 고향 티그리스강을 걷다」, 「나를 치유하는 여행」, 「세상의 끝, 오로라」 등을 통해 성찰과 깨달음을 깊이 있는 사유로 풀어낸 문장가로 주목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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