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⑬ 박상건, ‘매생이국이 파도소리를 퍼 올리다’

누군가를 기다린다, 바다로 열린 창가에

난 줄기가 그리움의 노을바다를 젓는다

울컥, *용정의 매생이국이 파도소리 퍼 올린다.

장작불 지피며 기다림으로 저물어 가고

온 식구들 가슴 따뜻하게 말아주던,

*공돌 소리마다 겨울밤은 아랫목으로

깊어 갔다.

 

등외품 신세인지라 공판장엔 따라가지 못하고

완행버스에 절인 눈물 다 쥐어짜고서야

좌판에서 실핏줄 눈을 뜨던, 그 눈길에 타들어 가던

광주 양동시장 인파 속의 햇살들.

 

햇살들이 백열등을 밝히고 귀항하는 노(櫓)소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야 마는,

그리운 갯비릿내 치렁치렁 밀려온다

저 바다로 청동울림들 처 올린다.

- 박상건, ‘매생이국이 파도소리를 퍼 올리다’ 전문

*龍井: 서울 종로구의 한정식 집

*공돌: 김을 말리는 것을 발장이라고 하는데, 이 발장은 팽이처럼 나무로 만든 공돌에 실을 감아 베를 짜듯이 떠넘기면서 왕골 띠를 엮어간다

 

노점의 매생이

 

나의 졸시이다. 나에게 바다는 각박한 서울살이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김을 일본에 수출하며 수출역군으로 살아가던 어촌의 밤은 갈대 모양의 왕골로 김을 말리는 사각형 판인 발장을 만들며 깊어갔다. 집집마다 5촉 전등 아래서 실을 묶는 공돌을 앞뒤로 넘기며 베 짜듯 엮어가는 소리로 겨울밤은 깊어갔다.

가난한 어민들에게 매생이는 가지 수가 적은 반찬을 대신해 밥을 말아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매생이는 얕은 갯벌의 바다에서 미세한 해초로 자란다. 그 시절 수협 공판장에서는 상품가치 대열에 끼이지 못해 오일장 좌판에서 팔려나갔다.

매생이국

 

그런 매생이가 지금은 도시의 한정식 메뉴로 대접받는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농담과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떠 올리게 한다. 일어섰다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 밀려가서는 백사장에 드러눕는 파도처럼, 세상만사는 새옹지마이고 그리움으로 그렇게 세월은 깊어간다.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저작권자 © 리빙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