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을 하는 혜경궁(김혜경)만신(사진=리빙TV DB)

만감이 교차하며 내림굿을 하다

김혜경씨는 고모(김금화씨)의 예언처럼 일찍이 무당 팔자라서 그런지 갖은 풍파를 겪으며 슬하에서 가난에 찌들어 힘들게 살았다. 당시 가부장제 문화로 인해 아들을 많이 선호하다보니 그녀보다 2살, 4살 위의 오빠 2명을 중심으로 집안이 돌아갔던 때여서, 초등학교도 빠듯하게 졸업한 다음 어머니가 장사를 가시거나 고모 일을 도와주고 하기에 김혜경씨 가 살림을 다 맡아 했다.

일찍 직장에 취직하여 일을 하며 시집을 가 23살에는 아들 2명을 낳았고, 꽃다운 나이라고 할 수 있는 29살에 좋은 세월도 못살아 보고 신병으로 인해 신 내림을 받아야 했다.

만감이 교차하여 서러워 울고, 고모에게 신을 받는 날에는 조상에서도 불쌍해서 많이 울리고 신에서도 많이 울었다. 조상 분들 입장에서는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고, 스스로 처량하여“내가 정녕 무당의 길을 가야하는건가?”하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괴로웠다.

신 내림 중에 아버지 김 씨 친가의 진조부리(친가 쪽 무속내력)는 고모도 모시는 신령님이 와서 고모와 김혜경씨를 왕래했고, 어머니 변 씨 외가에는 외조부리(외가 쪽 무속내력)에서 오신 신령님이 왔다. 그래서 고모와는 아버지 김 씨 진조부리만 같고, 어머니 변 씨 외조부리는 틀리다.

방황의 시간 끝에 무당의 길을 걷다

고모에게 내림굿을 받고 신당을 차린 후에도 무당이 되었다는 것 자체도 다른 것도 다 싫어 1년 동안 고모에게도 안가고 신당도 조성해두었지만 마음은 정처 없이 방황하다보니, 자꾸 엉뚱한 짓만 하게 되고 손님이 없어 먹을 게 떨어지면 신당에서 쌀을 내려먹어야 하는 힘든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그러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 날 김혜경씨는“아! 내가 사는 길은 신령님을 모시는 이 길밖에 없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까지의 방황을 멈추고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 무당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당이 된 후 딸을 낳아 기르고, 고모와 김혜경씨 이후로는 집안에 무당의 길을 걷는 사람이 없게 됐다. 하지만 무당의 길은 대물림되기에 무당의 길을 걷는 후손이 생길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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