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두 야 가련다.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압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 박용철, ‘떠나가는 배’ 전문

 

떠나가는 배

 

시인이 스물여섯 살 때인 1930년 3월에 김영랑 시인과 함께 발간한 「시문학」 창간호에 발표한 시이다. 순수문학을 이끈 시문학파는 김영랑,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이다.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나는 이 시를 꽤 비장하게 읊조리며 다녔다. 박용철 시인이 즐겨 읽었던 시가 괴테, 하이네, 릴케 등이었듯 그 무렵 문학청년은 독일시인의 번역 시를 주로 접했기 때문일 거다. 특히 박용철시인은 릴케와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았던 시인이다.

거기에 또 하나 이유는 작품의 시간적 공간이기 때문이었을 거다. 옥죄인 현실 속에서 젊은이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갈등이 오죽했을까. 젊은 피가 철철 흐르던 젊은 날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조국의 운명. 백성의 절규는 더욱 결연할 수밖에. 어디론가 떠날 수밖에 없는 유랑민의 처지라면 그 비애와 비장함은 클 수밖에.

용아 박용철은 시문학파이지만 김영랑, 정지용에 비해 서정성이 강하고 사상성과 민족의식을 작품 밑바닥에 깔았던 시인으로 평가한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훌쩍, 떠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 가는 마음인들’이라는 시구에 비장함이 함축돼 있다. “돌아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희살짓는다’라는 뜻은 짓궂게 일을 훼방 놓는다는 것. ‘헤살짓는다’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그렇게 ‘앞 대일 언덕’도 없이 떠나야만 한다. 타의에 의해.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여정을 의미한다. 그렇게, 훼방의 바람에 밀려 망명가는 백성. 조국을 떠나는 우리는 모두 ‘떠나가는 배’다. 그래서 가슴 아리지만 그렇다고 ‘눈물로야 보낼 거냐’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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