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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길 따스하시길요
고향 가는 길 따스하시길요
  • 박상건 기자
  • 승인 2019.02.01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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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섬으로 떠나는 사람들
선재도에서 측도 가는 길
선재도에서 측도 가는 길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라는 제목의 시이다. 설날이면 서울 등 수도권 대도시에서는 팔도강산에서 모인 사람들이 고향 가는 아름다운 동행에 나선다. 때로는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어깨, 사업과 구조조정, 불효 등으로 가슴이 아리곤 하지만, 자식과 손주에 대한 기다림으로 깊어간 시간들, 그런 그리움에 사무치다 선산에 묻힌 혈육의 끈끈한 세월만큼 더할 수는 없다.

저마다 연어 떼처럼 모천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마음 깊이 간직한 안부 편지의 수신인은 어머니고 고향이 기항지다. 입김 서린 차창에 기대어 졸고 있는 풍경, 갓길에서 기지개를 펴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그곳은 우리들의 원초적 본향이다. 그 여정에 마주친 얼굴들을 보면, 꼭 한 번쯤 어디선가 마주쳤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다.

완도 회흥포에서 노화도 보길도 가는 미지막 철부선
완도 회흥포에서 노화도 보길도 가는 미지막 철부선

 

세상이 좋아져 섬과 섬 사이를 연륙교로 이어가고 있다. 육지와 본섬 사이를 건너 편안하게 고향에 당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본섬에서 다시 작은 섬, 그 작은 섬에서 더 외딴 섬으로 건너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해안과 서해안에 딸린 섬사람들은 그렇게 뭍에서 섬으로, 섬에서 섬으로 건너가는 삶을 살아간다.

문제는 철부선이 항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상 상태가 안 좋거나, 철부선이 운항을 해도 다시 작은 배가 들어가기에는 섬과 섬 사이에 파도가 거센 경우다. 경기 시흥시와 안산시는 방조제로 대부도까지 연결했고 다시 대부도와 영흥도와 선재도가 다리로 연결됐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인천항에서 배를 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들 섬에서 다시 배를 타야 하는 사람들은 바다 날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재도에서 건너 들어가는 작은 섬 측도는 섬에서 570m 정도의 거리에 있다. 하루 두 번 썰물 때 건너갈 수 있다. 서산 웅도 섬사람들도 이렇게 물때에 맞춰 섬을 드나든다.

밀물과 썰물은 달과 태양의 인력, 지구의 원심력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달과 태양이 지구와 일직선상에 놓이면 끌어당기는 힘이 가장 커져 달 쪽을 향해 바닷물이 부풀어 올라 밀물이 되고, 반대로 태양과 지구와 달이 직각을 이룰 때 바닷물이 줄어들게 되어 썰물이 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관광 마케팅으로 활용한 것이 이른바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이라는 것이다. 해양 용어는 ‘해할’이다. 정월대보름 전후 바다 수면이 해저보다 낮아지면서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이다. 진도, 여수 추도 일대, 완도 동부 일대, 화성 제부도, 서산 웅도, 보령 무창포 등 남서해안에 산재한다. 섬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바지락을 캐고 그물을 털러 나간다.

고마도로 건너가는 귀향객들
고마도로 건너가는 귀향객들
대물도 인근 무인도 어부
대물도 인근 무인도 어부

 

완도의 사후도 사람들은 완도 본섬 대야리 선착장에서, 고마도 사람들은 영풍리 선착장에서 보트나 어선을 타고 섬을 건넌다. 제주도 우도는 성산포항에서 5분 거리에 있지만 물살이 거센 해협 때문에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고향 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되돌아서야 한다. 통영, 신안, 진도, 옹진에 딸린 수천 개 다도해 섬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통영시 대매물도는 여객선이 다니지만 인근 작은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인도 아닌 무인도처럼 살아간다. 이들 일부 섬사람들은 여객선이 해상에서 사람과 짐을 내려주면 작은 배나 배처럼 만든 운반수단에 몸을 맡긴 채 이동하기도 한다.

웅도 바닷길
웅도 바닷길

 

이처럼 열악한 교통수단을 통해 고향 가는 섬사람들은 해상 날씨가 궂은날에는 여객선터미널 근처 여관에 투숙한다. 그래서 설날이면 여객선 터미널 여관거리는 때 아닌 투숙객들로 붐빈다. 그들은 고향을 바로 앞에 두고 이제나 저제나 풍랑주의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린다. 변덕이 심한 해상 날씨는 출항 한 시간 전에 바닷길을 가로막곤 한다. 항구 앞바다는 잔잔해도 먼 바다에 풍랑이 거세면 출항이 금지된다.

살며 사랑하며 무심히 흘러온 시간들 속에서 꾹꾹 눌러둔 그리움들. 그 그리움으로 깊어간 고향 섬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며 단 한 번도 자연을 거역한 적이 없다. 고향 앞바다에서 맑고 푸른 파도 소리에 각지고 팍팍한 삶을 잠시나마 헹궈내고 싶었을 뿐이다.

바다가 열어준 시공간만큼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도 “매양 추위 속에/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운명이다. 그러니 “오늘 아침/따뜻한 한 잔 술과/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그것만으로도 푸지고/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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