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25 송수권, ‘시골길 또는 술통’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 송수권, ‘시골길 또는 술통’ 전문

 

 

요즘은 비포장 신작로가 드물 정도이다. 선산 앞까지 포장도로 시대이고, 그것이 마을과 자치단체의 부와 행정서비스의 수준으로 인식될 정도이다. 그렇게 울퉁불퉁 황톳길은 추억 속의 오솔길로 남아있다.

흙길은 마을과 들판의 경계이자 경계 없이 사는 농촌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에는 구판장이 있었다. 마을이 공동 운영하는 유일한 가게였다. 생활필수품을 주로 팔면서 막걸리를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구판장 막걸리는 읍네 양조장에서 배달됐고 운반 수단은 자전거였다. 막걸리 자전거는 움푹 패이고 멋대로 자란 잡풀 떼기 비포장 시골길을 비틀거리며 달렸고 이따금 자갈이 허공으로 튀어 올라 논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그렇게 자전거는 동구 밖을 지나 구판장에 당도했다.

향토적 서정을 노래한 송수권 시인은 이런 돌들이 튕기는 시골길 풍경을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시골길이 술을 마신다/비틀거린다”라고 표현했다. 곡선의 시골길을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고 노래했다. 고정된 사물에 가락을 넣어 정형화 할 줄 아는 천부적 시인을 그래서 언어의 마술사라고 부르지 않던가.

막걸리 통은 자전거 뒤 짐받이에 차바퀴 튜브를 잘라서 만든 단단한 동아줄로 동여맸다. 들길은 통통 튀는 술맛에 취한 듯 비틀비틀 꼬부랑길을 거쳐 동네방네 애주가들이 목 메여(?) 기다리던 구판장 아주머니 앞에서 그 여정을 마쳤다.

이 광경을 “주모가 나와 섰다/술통들이 뛰어내린다/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라고 표현했다. 길이 끝났는데 구판장 아줌마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정적인 풍경이 동적인 리듬과 묘사로 생동감 있게 살아났다. 그렇게 양조장을 떠난 자전거 길은 시계태엽이 감기듯이, 당긴 고무줄을 놓듯이 감겨들어갔다.

막걸리 한 사발에도 이처럼 정겨운 농촌문화와 안빈낙도의 삶을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와 추억이 출렁이고 있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청산도 서편제길

 

저작권자 © 리빙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