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세상] 27 문정희 ‘물 만드는 여자’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려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 쉬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 (문정희, ‘물 만드는 여자’ 전문)

문정희 시인은 해외여행 길에 어느 전람회장에서 여성이 오줌 누는 장면의 그림을 보고 이 작품의 시상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 시는 애잔하고 장엄한 모성애 혹은, 힘들고 지친 이 땅의 어머니들이 나지막하게 들려주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가/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참아라, 딸아. “그럴 때일수록/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대지에다가 살짝”,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으로 스미게 하란다. 그 강물이 마침내 산천초목의 푸른 생명들을 쑥쑥 밀어 올려줄 테니 말이다.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라는 표현에서 시인의 평소 기질과 용기를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 관능적 언어처리 기법에서 시인의 열린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라는 표현에서 한 페미니스트의 소리 없는 아우성도 전율한다. 이도저도 우리 시대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모성애’라는 고유한 정서 없이 불가능하다. 숙성된 삶을 바탕으로 한 어머니의 지혜가 빚어진 메시지이다.

여성의 ‘하초’, 그 한 방울이 리드미컬하게 대지로 흘러가 메마른 대지를 적신다. 물을 최고의 선으로 노정한 노자에게 물은 곧 도(道)에 이르는 과정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이 곧 생명이다. 흐르는 물은 다투지 않는다. 큰 바위가 가로막으면 몸을 나누어 지나간다.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운 연후에 뒷물결과 함께 바다에 이른다. 이를 도라고 불렀다. 물은 그렇게 낮게, 소외된 곳으로 흘렀다.

그렇게 물은 긴 시간을 감내한 그 어떤 슬픔과 인내를 보듬고 자비의 깊이를 향하여 속울움을 풀어가면서 푸르게, 푸르게 적셔갔다. 그러고 보니 저 산, 저 골짜기 풍경도 여성이 오줌을 누고 있는 모습을 빼닮았다. 묵묵히 호미질 하는 아낙의 아랫도리를 닮았다.

그렇게 이 봄에 아질아질 피어오르는 봄 향기와 봄의 신록은 진정, 우리네 어머니 눈물을 밑거름으로 피어난 영혼의 꽃밭이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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