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32 손동연, ‘꽃밭에서’

목련꽃이 흰 붕대를 풀고 있다

나비 떼가 문병 오고

간호원처럼 영희가 들여다보고 있다

해가 세발자전거를 타는

삼월 한낮.

- 손동연, ‘꽃밭에서’ 전문

목련 하늘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에 이 시를 접했다. 손동연 시인은 고등학생 때 이 동시로 등단했다. 당시 광주지역 문예반원들에게는 단연 화제의 인물이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교화가 목련이었다. 목련 꽃 그늘 아래서 교지편집회의를 하곤 했다. 그것은 문학소년에게 봄날의 최대 뽐내기였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백목련 꽃말은 고귀함, 자연애, 숭고한 사랑이다. 유난히 맑고 푸른 3월의 봄날에 백목련이 피어 있는데 소녀가 꽃을 만지고 있는 풍경이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이다. 소녀는 향기롭고 고귀한 꽃 매무새에 취해 있고, 나비도 사뿐사뿐 허공을 즈려밟으면서 날아들었다. 멀리서 바라본 푸른 하늘에는 둥근 해가 이웃집 소년처럼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

시인의 렌즈는 목련꽃을 중심으로 근접 촬영 방식에서 망원렌즈를 다시 장착해 꽃밭에서 자전거 타는 마을 또는 우주의 공간으로 확대했다. 그래서 독자의 시야도 그만큼 넓어졌다. 자연스럽게 더불어 대자연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렇게 정겹고 평화로운 봄날의 풍경화가 아름답게 그려지고 독자도 그 속으로 살며시 젖어들고 만다.

목련

 

이 시가 절창을 이룬 데는 목련이 꽃망울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풍경을, 퇴원하는 환자가 흰 붕대를 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 대목이다. 독자들은 유연한 백목련 이미지와 붕대를 풀어내는 환자 모습, 백의의 천사를 떠올리며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시적 감동에 취해 한 줄을 더 읽다보면 ‘나비=문병’, ‘간호원=영희’, ‘해=세발자전거’ 비유하는 시인의 글 솜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앞으로 그 어떤 시인도 최소한 ‘목련’을 소재로 하여 시를 짓는다면 이 보다 더 유려하고 찬란한 시를 생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손동연 시인은 1955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했다. 197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78년 아동문예 동시 추천, 198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가 당선됐다. 대한민국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동시집 ‘그림엽서’, ‘뻐꾹리의 아이들’(1∼5), 시집 ‘진달래꽃 속에는 京義線이 놓여 있다’ 등이 있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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