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풍경] 38 이육사, ‘청포도’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계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이육사, ‘청포도’ 전문

 

이육사 시인은 1904년에 태어나 44년에 운명했다. 불혹의 문턱에서 청초한 생을 마감했다. 일제에 항거하며 17번 감옥에 갇혔다. 이 시가 더더욱 청명하고 고고한 삶과 철학을 재현한 이유이다.

시인은 생전에 34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은 1939년 ‘문장’에 발표했던 시이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적 감각에 조국 광복에 대한 희망과 환희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광복에 대한 그리움을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라고 읊조리는데, 인간의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기도 하다.

시인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고 그곳에 ‘이육사 문학관’이 있다. 포항에는 ‘청포도문학공원’이 있다. 호미곶에 가면 ‘청포도 시비’가 있다. 포항시 청림동 일대는 100년 전 동양 최대 규모의 포도밭인 ‘삼륜포도원’이 있었다. 이육사 시인은 이곳에서 이 시를 썼다.

그래서 안동은 바닷가가 아닌데도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는” 이란 표현이 나올 수 있다. 포도밭 바로 앞에 호미곶 등대가 불 밝히는 드넓은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시인은 ‘청포도’라는 시를 통해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의 소망을 노래했다. 청포도라는 소재의 신선한 감각과 선명한 색채 영상들이 잘 어울려서 작품 전체에 아름다움과 넉넉함을 준다. 특히, 식민지 치하의 억압된 현실은 시인이 꿈꾸는 현실과 대립하면서 이를 이겨내고자 하는 극복 의지가 담겨 있다.

세상이 좋아져 봄날에도 청포도를 만날 수 있고 집 근처 마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에게 당시의 청포도는 식민지 시절의 ‘고달픈 몸’의 상징이다. 시의 흐름에서 어둠을 밝히는 등불로도 묘사됐다. 특히 푸른 빛, 흰 돛단배, 하늘, 푸른 바다, 청포, 모시 수건, 은쟁반 등의 시어들이 시 전체 풍경을 더욱 맑고 밝은 빛깔을 우려내주는 장치로 쓰였다. 오늘은 이 시와 함께 상큼한 청포도를 알알이 까먹는다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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