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스며든 헤세...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

△ 내 삶에 스며든 헤세(강은외 외, 라운더바우트, 500쪽)

헤르만 헤세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출신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올해로 출간 100주년이 된 고전이지만 여전히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다.

최근에는 월드스타 반열에 오른 방탄소년단(BTS)이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2집 앨범 ‘윙스’(WINGS)를 만들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덕에 ‘데미안’'을 접한 청소년도 있겠지만, 열 살 소년이 스무 살 청년이 되기까지의 고독한 성장기를 그린 이 작품은 오래전부터 방황하는 청춘들 필독서였다.

1877년 태어난 헤세는 1919년 이 소설을 발표했다. 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1962년 타계했다. ‘데미안’을 읽고 자란 청춘들도 어느새 중년, 노년이 됐다.

신간 ‘내 삶에 스며든 헤세’는 우리 사회 명사들이 헤세 문학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영화평론가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장이 기획하고 각계 인사 58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강은교, 김경주, 박노해, 이외수, 이해인 수녀 등 문인들을 비롯해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송한샘 뮤지컬 프로듀서, 심영섭 영화평론가, 오거돈 부산시장, 윤승용 남서울대 총장, 임진모 음악평론가, 임현정 피아니스트, 최재천 변호사 등 헤세를 읽고 자란 다양한 분야 필자가 헤세를 말한다.

문인들은 헤세 문학이 자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보고, 학자들은 헤세의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른 필자들도 저마다 헤세와 인연을 맺고 보낸 지난날을 수필 형식 글로 추억한다.

1975년 처음 헤세 문학을 접하고 ‘헤세앓이’를 했다는 기획자 전찬일 평론가는 “지난 44년을 헤세와 함께 살아왔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헤세는 개별 인간의 자아 성찰·탐구는 물론 인간 일반의 근원적 존재성을 탐색한 문화예술가-인간”이라며 “헤세야말로 작금의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히 소환·요청돼야 할 존재”라고 찬사를 보냈다.

△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재레드 다이아몬드, 김영사, 600쪽)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중국의 4대 고서인 주역(周易)에 나오는 핵심 철학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 세계적 문화인류학자이자 문명연구가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신간 ‘대변동:위기, 선택, 변화’를 읽다보면 이 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동서고금을 초월한 가르침이어서일까.

미국 UCLA 지리학과 재레드 다이아몬드(82) 교수는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 중의 석학으로 꼽힌다. 문화인류학에서 역사, 과학, 미래 전망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역동적 변화를 예리하게 파헤쳐왔다. 생리학자로 출발해 진화생물학과 생물지리학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교육과 연구 일선에서 인류문명의 이정표 구실을 톡톡히 해낸다.

영어판과 한국어판이 동시 출간된 ‘대변동:위기, 선택, 변화’는 글로벌 베스트셀러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 등 역작에 이어 그가 6년 만에 선보이는 회심의 저서이자 60년 문명연구의 총결산이다.

기존 책이 인류사적·문명사적 거대 담론을 다뤘다면 이번 저작은 좀 더 구체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세계를 천착해나간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한국 사회와 밀접한 일본, 미국이 당면한 위기를 상세히 분석하며 향후 우리 인류가 선택하고 변화해야 할 최선의 해법을 제시해 더욱 눈길을 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영어에서 ‘위기’를 뜻하는 ‘crisis’가 그리스어 명사 ‘krisis’와 동사 ‘krino’서 파생됐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 크다. ‘구분하다’, ‘결정하다’, ‘전환점’을 뜻하는 이 말은 중대한 고비야말로 결정적 전환점임을 상기시킨다. 기존 대처법이 위기 해결에 적절치 않다면 새로운 대처법을 고안해 해결해 보라는 압력이자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무엇이 ‘위기’인지 정의하면서 그 해결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을 12가지로 정리해 분석해 나간다. 그리고 변화를 요구하는 안팎의 압력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려면 ‘선택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들 12가지 요인은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정직하게 평가’해 새롭게 닥친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부분과 바꿔야 하는 부분이 뭔지 가려내는 ‘선택적 변화’를 하는 것이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위기가 닥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과 국가의 경우 대부분의 위기는 오랜 기간 축적된 점진적 변화의 결과이다. 오랫동안 갈등을 겪은 부부는 이혼하기 마련이고, 칠레의 쿠데타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축적돼 나타난 결과였다.”

“개인이 위기에 처하면 유사한 위기를 경험한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해결책을 모색하듯이, 국가도 위기에 처하면 유사한 위기에 부딪힌 다른 국가들이 이미 고안해낸 해결책을 차용하고 채택할 수 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개인의 위기 극복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국가의 위기에 확대 적용한다. 저자가 밝힌 ‘국가 위기 해결을 위한 12가지 요인’이란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책임의 수용, 해결해야 할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울타리 세우기, 다른 국가의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지원, 문제 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국가의 사례, 국가 정체성, 정직한 자기 평가, 역사적으로 과거에 경험한 위기,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 국가의 핵심 가치, 지정학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 같은 요인을 토대로 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이 분석 대상이 됐다. 이들 7개국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에 부딪혔으나 선택적 변화를 통해 국가 위기를 극복해냈다는 것.

예컨대, 1939년 국경을 맞댄 소련으로부터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핀란드는 저자가 제시한 핵심 요인 중 하나인 ‘정직한 자기 평가’로 생존을 위해서라면 소련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했고,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는 대대적인 ‘울타리 세우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했다.

위기는 파도처럼 개인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지금도 끊임없이 밀려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때마다 현명하고 과감하게 선택하고 극복하는 것. 앞에서 언급한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의 연속적 순환이라고 하겠다.

이와 관련해 다이아몬드 교수는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위기는 과거에도 국가를 곤경에 빠뜨렸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대 국가와 현 세계는 어둠 속에서 헤맬 필요가 없다. 과거에 효과를 발휘한 변화와 그렇지 않았던 변화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자신을 ‘신중한 낙관주의자’로 표현한 저자는 이번 책에서 위기를 나열하는 것도 비관주의를 퍼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데 필요한 태도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들려준다.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비로소 선택과 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개인과 국가나 다를 바 없다. 위기의 국면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는 지혜와 용기를 저자는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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