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 39] 유치환, ‘그리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유치환, ‘그리움’ 전문

 

덥고 답답하다. 무작정,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렇게 푸른 파도가 그리운 계절이다. 청마 유치환 시인은 통영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이 시는 답답하고 외롭고 그리운 이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다.

부서져서 아름다운 파도. 이 시를 읽노라면 파도가 주는 청령감과 파도가 스러질 때 그 풍경 속으로 스며든 느낌이 좋다. 이 시에서 파도는 누군가가 그리워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의 기표일 수 있고, 가없이 그리운 만큼 부서지고 부서져서 끝내 적멸하는 그 무엇일 수도 있다.

파도는 바라보는 사람의 정서에 따라 다름과 차이가 있다. 신지도 명사십리에서는 그리움을 밀가루 반죽처럼 감아올리듯이, 빈 가슴을 죄다 공 구르면서 마침내 백사장으로 드러눕는 파도를 보았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잔잔한 바다의 파도는 그런 모습이다.

폭풍주의보 내린 무창포에서는 온 바다를 뒤집고 휘감아서 방파제 등대에서 강렬하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았다. 이런 날을 예감한 어부들은 이미 해안가로 배들을 끌어 올려놓은 상태였다. 나는 허옇게 부서지는 그 물보라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승용차를 몰고 방파제 등대로 다가섰었다.

내가 위험천만한 공간에 이방인으로 갇혀 서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후 방파제에는 ‘영원한 침묵’뿐이었다. 승용차도 등대도 온몸으로 물보라를 맞았고 그렇게 부서졌다. 해일주의보가 내린 바다라는 그렇게 천지간을 뒤집고 있었다. 해양경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방파제를 빠져나왔다. 뒤돌아보는 등대에는 여전히 물보라가 강하게 내리쳤다. 그 파도를 온 몸에 맞으면서도 두 눈을 깜박, 깜박이면서 어둔 바다를 밝히던 등대, 나는 그 등대에서 모성애를 읽을 수 있었다.

인간은 역시 연약한 갈대이고 자연은 그 갈대를 키우는 위대한, 영원한, 그 어떤 생명력과 영혼을 가진 대상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렇게 부서지는 것은 새로운 창조의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바다는 파도로 비워냈다. 비워낸 만큼 다시 파도가 밀려와 바다를 채웠다. 허하면 채우고 여백 없는 바다라면 다시 파도가 밀려와 비어냈다.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날 어쩌란 말이냐”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살다보면 까딱도 않는 일 앞에 서성이고 그 어떤 걸림이 무심하게 풀어지는 경우도 있다. 인생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사는 일이다. 때로 외롭고 그립고, 때로는 슬프고 아프다. 파도는 수많은 바닷길에서 암초와 바위, 해안절벽을 만나고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 밀려온다.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푸르러 간다. 푸른 파도는 그런 것이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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