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페어...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언페어

 

△ 언페어(애덤 벤포라도, 세종서적, 480쪽)

벤포라도 교수가 해부한 사법체계에 숨겨진 불평등은 미국의 사례이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익숙한 한국 상황과도 닮았다.

대개 한 손에 저울, 다른 손에는 칼을 쥔 서구권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가리고 있다. 빈부나 신분 등과 관계없이 모두를 공정하게 대한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의의 여신은 어떤 선입견도 없이 공평한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애덤 벤포라도 미국 드렉셀대 법대 교수는 이번 신간에서 오늘날 형사 사법제도의 불공정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피의자의 직업, 외모, 재산 등 범죄 실체와 무관한 요소들에 따른 편견 속에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된다고 그는 지적한다. 오류는 사건 발생 초기 피해자 발견 순간부터 발생한다.

어느 겨울날 워싱턴 D.C. 거리에 쓰러진 채 한 남자가 발견됐다. 그는 목격자의 신고로 현장에 도착한 응급구조대원 앞에서 구토했다. 대원들은 술 냄새를 맡았다. 남자의 머리 부분에 피가 보였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거의 의식이 없었다. 응급구조대원들은 취객이라며 남자를 병원에 넘겼고, 응급실에서는 제대로 남자를 진단하지 않고 술이 깨도록 내버려 뒀다.

알고 보니 남자는 취객이 아니라 강도들에게 파이프로 머리를 맞고 쓰러진 유명 언론인 데이비드 로젠바움이었다. 응급구조대원의 초진 이후 8시간이 더 지나서야 뇌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다음날 사망했다. 그 취객이 뉴욕타임스 출신 로젠바움으로 밝혀지자 상황은 급변했다. 추도식에는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고, 당국은 비상 대응 체계를 대대적으로 점검했다. 현금 270달러와 신용카드를 훔친 범인 햄린과 조던은 각각 26년형, 65년형을 받았다.

뒤늦게 정의의 여신이 칼을 휘둘렀지만, 신원 미상의 취객이었던 당시 남자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범죄 처벌에서 예방으로 사회자원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나탈리 코프만 켈리파, 작가정신, 344쪽)

인류사에서 놓쳐서는 안 될 여성 100인의 인물 열전. 기원전 320만년 최초의 여성 ‘루시’부터 2016년 국제축구연맹(FIFA) 첫 여성 사무총장에 오른 파트마 사무라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루시와 파트마 사이를 달려온 여성 98인의 전기는 흥미롭다. 이들 인생사는 때론 진지하고 때론 경이롭게 느껴진다.

100인 중에는 신라의 선덕여왕도 포함됐다. 저자는 선덕여왕에 대해 “최초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기반을 다졌다”며 높이 평가한다.

“두뇌가 명석한 선덕은 지혜와 분별력으로 신라를 다스렸다. 선덕은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력, 능란한 외교술로 왕국을 단결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고구려와 백제는 분열되었다”(39쪽)

1521년 아스테카 제국(현 멕시코)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의 정부이자 나우아족의 공주였던 라 말린체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그는 코르테스와 사이에서 아들 마르틴을 낳으며 멕시코의 시조를 낳은 어머니로 기억된다.

“이 여성에 대한 감정은 상충한다.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반역을 저지른 여성이었고, 다른 이들에게는 수많은 목숨을 구해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60쪽)

저자는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서문을 따로 썼다. “이제 가부장제 사회는 끝났다”며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여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이제 더는 한낱 욕망의 대상이길 거부하면서 평등과 민주주의에 근거한 사회개혁에 나서고 있다”. 그렇게 ‘미투 운동’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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