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에서 온 공병석 씨가 ‘몽땅걸이’에 성공했다.(사진=월간낚시 제공)

미루고 미뤘다.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중순부터 한반도를 덮친 혹한은 나의 ‘게으름병’에 면죄부를 주기에 충분했다. 얼음판을 뚫고 입질을 기다리는 ‘얼음낚시’가 제격이긴 하지만 올 겨울 강추위는 열혈꾼들 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게 만들었다. 한겨울과 낚시는 사실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혹한의 악조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마릿수 입질을 받을 수 있는 낚시가 있다. 동해북부에서 한겨울에 성행하는 가자미 배낚시가 바로 그것이다.

평일에도 낚싯배가 꽉 찬다

그 취재를 나는 1월 내내 미루고 있었다. ‘아무리 잘 낚여도 그렇지, 지금 배를 타면 동태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2월로 들어서자 날씨가 살짝 풀렸다.
나는 강원도 고성 공현진항에서 낚싯배 돌핀마린호를 모는 최상용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나와요?”
“예, 잘 나오고 있어요.?”
“이렇게 추운데도 손님이 오나요?”
“매일 정원을 꽉 채워서 나가요.”
나는 최선장에게 ‘내일 갈 터이니 한 자리 빼 두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월 2일 새벽 4시에 집(경기도 고양시)을 나섰다. 날씨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자동차의 외부 디지털 온도계에는 영하 12도가 찍혀있다. 서울양양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최상용 선장이 운영하는 낚시점(공현진낚시마트)에 도착하니 그제야 주변이 희뿌옇게 밝아온다. 오전 7시. 공현진항에는 꽤 많은 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난롯불을 쬐고 있다. 최 선장의 돌핀마린호 선승명부를 보니 20명의 꾼들 이름이 이미 빽빽하다. 맨 마지막에 나도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고 배에 올랐다.
동해북부, 즉 강원도 고성 앞바다 가자미 배낚시 포인트는 뭍에서 멀지 않다. 우리가 탄 돌핀마린호는 해가 뜨는 쪽으로 10여분 달린 후 엔진 출력을 줄인다.
“삐~익~!”
최 선장이 꾼들에게 채비를 내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바닥까지 수심은 77m. 선실 좌우 갑판에 늘어서 있던 20명의 채비가 일제히 바다 속으로 내려간다. 100호 짜리 제법 묵직한 봉돌이 달린 채비가 바닥에 닿으면 그때까지 주르륵 풀리던 낚싯줄이 턱 멎는다. 봉돌이 바닥에 닿은 것이다. 봉돌 위에는 10개의 가지채비가 달려있다. 이때 전동릴을 두세 바퀴 감아 원줄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바닥에 서식하면서 자신의 눈 위를 지나는 먹잇감을 덮치는 가자미를 노리기에 이보다 좋은 채비가 없다.

한 번에 10마리씩 ‘몽땅걸이’ 속출

입질은 초릿대로 확인할 수 있다. 가자미가 미끼를 물면 초릿대가 까딱까딱 거린다. 초보꾼들은 이럴 때 바로 릴을 감는다. 그러면 가자미가 낚이긴 한다. 한두 마리 정도. 그러나 베테랑꾼들은 초릿대가 까딱거린다고 해서 바로 릴을 감지 않는다. 원줄을 좀 더 풀어주거나 반대로 원줄을 살며시 감으면서 한 번에 마릿수 가자미를 노린다.
“가자미는 식탐이 강해요. 자기들끼리 먹이 경쟁도 치열해서 그걸 이용하면 ‘몽땅걸이’를 할 수 있습니다.”
최상용 선장이 말하는 ‘몽땅걸이’는 채비에 달려있는 바늘 10개에 10마리의 가자미를 한 번에 모두 걸어내는 걸 뜻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줄을 태운다’고도 표현한다. 어쨌든 이렇게 몽땅걸이를 하려면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가자미 활성도가 좋을 때는 바닥에 있는 놈들이 위로 떠올라서 먹이사냥을 합니다. 이럴 때는 처음 입질을 받고 조금씩 릴을 감아주면서 가자미 무리를 위로 띄우는 게 좋아요.”
최 선장은 그러나, 활성도가 낮을 때는 오히려 채비 10개를 모두 바닥권에 눕히는 게 효과적이라고 한다. 바닥권에서 입질이 집중될 때는 반대로 원줄을 천천히 풀어주라는 거다. 이걸 잘 아는 베테랑 꾼들은 원줄과 채비를 연결하는 도래에 작은 봉돌을 하나 더 달아주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그 작은 봉돌이 바닥 쪽으로 먼저 내려가면서 바늘 10개를 모두 바닥에 빠르게 내릴 수 있다.
“잘 잡는 사람은 40리터짜리 쿨러를 다 채워요. 그럼 한 300마리 정도 되죠.”
최 선상의 말마따나 한 번에 10마리씩 10번이면 100마리, 그걸 30번만 성공시키면 된다는 계산이다.

어느 70대 노부부 이야기

이날 입질은 빠르게 시작됐다. 첫 채비가 내려가자마자 여기저기서 투둑투둑 초릿대가 신호를 보냈다. 겨울이면 한 달에 서너 번 정도 공현진항을 찾는다는 공병석 씨(충남 서산)는 이날 가장 먼저 ‘몽땅걸이’ 솜씨를 보인다. 선실 오른쪽에서 채비를 내리던 강릉꾼 신재유 씨도 연거푸 7~8마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채비를 걷어 올린다.
그러던 중 저쪽 선미에 있는, 부부로 보이는 꾼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자는 남자가 걷어 올리는 채비에 매달린 가자미를 하나씩 떼어내고, 남자 채비의 빈 바늘에 지렁이 미끼를 꿰어준다. 그리고는 다른 낚싯대를 들어 자신의 채비도 내린다.
“우리 아저씨가 시각장애인이에요.”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안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 옆에 있던 여성꾼이 내 표정에서 의아함을 읽었나 보다.
“제가 13년 전에 사고로 두 눈을 잃었어요. 그 전에는 참 낚시를 좋아하고 많이 다녔는데….”
남편 윤명희 씨에게 아내 나미자 씨는 자신의 눈과 같은 존재다. 시력을 잃은 후 그렇게 좋아하는 낚시를 못한다는 상실감에 빠진 남편을 위해 나미자 씨는 기꺼이 남편이 눈이 되어 낚시터를 다녔고, 지금은 남편 못지않은 베테랑 꾼이 되었다.
이 70대 노 부부는 이날 선미에서 차곡차곡 조과를 올리고 있었다. 윤명희 씨는 눈 대신 릴에서 방출된 원줄을 잡은 손가락으로 입질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부부의 아이스박스에는 그들만의 사랑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가자미 무침회 점심에 손질까지 풀 패키지

오후 2시. 6시간 정도의 낚시를 마친 배는 다시 공현진항으로 돌아왔다. 꾼들은 가자미가 가득 든 자신들의 아이스박스를 들고 낚시점으로 향한다. 낚시점 옆에 있는 휴게실 겸 식당에는 따끈한 시래기 된장국과 막 썰어낸 가자미 무침회가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꾼들이 여기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동네 아주머니들은 꾼들의 조과를 깔끔하게 손질해 준다.
“요건 횟감으로, 요건 조림용으로 부탁합니다.”
꾼들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자신들의 조과를 담은 후 이들 아르바이트 아주머니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점심을 다 먹고 나오면 깔끔하게 장만된 가자미회가 작은 스티로폼 도시락에 담겨있다. 이 서비스는 1kg 당 4,000~5,000원 선.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그런데 낚시장비가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현장에서 낚시장비를 빌릴 수 있다. 전동릴과 낚싯대를 2만원에 빌린 후 지렁이(4,000원 × 2통)와 채비(2,000원 × 5개)를 사면 누구라도 쉽게 마릿수 손맛을 볼 수 있다. 선비는 1인 6만원(4월부터는 7만원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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