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작가 김혜련의 밥, 집, 몸, 일에 대한 이야기

세계는 들끓는다

 

△ 세계는 들끓는다(놈 촘스키, 창비, 316쪽)

놈 촘스키 미국 MIT 명예교수가 언론인 데이비드 바사미언과 2013년 6월부터 4년간 진행한 12차례의 인터뷰 내용이다.

저자는 먼저 “오늘날 미국에는 하나의 정당밖에 없다. 그것은 ‘기업당’이다”라며 신랄한 논평을 날린다.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면서 대중을 위하는 것처럼 기만하는 미디어 기업의 실체도 폭로한다.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했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상위 0.1%의 사람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설계하며, 이야말로 ‘금권 정치’라고 개탄한다.

이걸로도 모자라 기득권은 대중의 감시를 체계화하고, 테러 위협을 과장해 대중으로 하여금 국가의 통제를 수용하게 만들며, 각종 복지 혜택까지 삭감한다. 이를 ‘민주주의 후퇴’로 진단한 저자는 그 뒤에 도사린 신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춘다.

전후 유럽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복지 국가는 사민주의·중도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광풍 앞에서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복지 국가를 가능케 했던 민주주의마저 쇠퇴하고, 이런 우경화가 자본주의를 수용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난다고 꼬집는다.

미국에서 비롯된 테러 공포 또한 정치적 이익을 목적으로 자국민을 위협하는 정부가 ‘공포 마케팅’을 펼친 결과로 풀이한다. 테러로 귀결되는 갈등의 뿌리는 이슬람이지만, 이를 세계로 확산시킨 것은 미국의 대외정책이란 뜻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을 앞세운 서구 세력이 중동에서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상대를 고른 후 지원과 배신을 되풀이했고, 그 결과 명분 없는 전쟁이 자행된다고 설명한다. 이 악순환을 멈추려면 테러로부터 방어를 외치는 정부야말로 테러의 위협을 극대화하는 장본인임을 깨닫고, 안보국가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라는 게 저자의 해법이다.

마지막 인터뷰가 이뤄진 2017년 6월은 한국에서 촛불혁명으로 새 정부가 탄생한 직후이자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때다. 저자는 당시 미국이 위기 해결의 기회를 날렸다고 말한다. 북한이 자신들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지하면 핵 프로그램을 동결한다고 제안했지만 미국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곪아 터질 지경인” 한국 문제에서도 희망을 발견한다. 현 정부의 외교 방안과 화해 노력이다.

밥하는 시간

 

△ 밥하는 시간(김혜련, 서울셀렉션, 316쪽)

매일같이 해가 뜨고 진다. 하루에도 수차례 밥을 하고 먹는다. 아침저녁으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한다.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 그래서 지금 여기가 아닌 저 너머의 다른 곳과 다른 시간을 꿈꿔 본다.

하지만 꿈만으로 빡빡한 삶을 지탱하노라면 어느 순간 공허해진다. 저 너머는 언제나 저 너머일 뿐 지금 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의 일상에서 그 누구도 아닌 오롯이 나로서 행복하게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지금 여기’의 삶을 우리에게 돌려주는 작고 소중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밥이고, 집이고, 몸이고, 일이고, 공부란다. 평범하다 못해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일상에서 참의미를 회복하고 새로운 관계 맺기로 삶을 치유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다.

저자는 20여 년간 국어교사로 살았다. 그러다 40대 후반에 교직을 떠나 경주 남산마을로 들어갔다. 출가수행과 같은 입산이랄까? ‘저기’의 삶이 아닌 ‘여기’의 삶을 그토록 갈망했다. 그리고 지금은 경주보다 더 많은 자연 속으로 옮겨 잘 늙어가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일상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로 삶을 탐구한다. 혼자 먹는 밥상에서 늦가을의 햇살과 뜨듯한 땅속의 기억을, 청소하며 집과 가구의 정겨운 감촉을, 그리고 아궁이에 불 때며 존재의 위엄을 보고 만난다.

일상의 사물에 대한 감수성을 되찾는 것이 곧 삶을 되찾는 것이다. 감각한다는 것은 사물을 직접 만나는 것이고, 그 직접적 만남은 삶을 견고하고 풍성하게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세상의 기쁨이, 작고 소중한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다.

저자는 일상을 이해할 새로운 개념을 이야기하고 이를 다시 일상을 살면서 확장시킨다. 공부하고 배운 것을 일상으로 살아보고, 일상으로 살면서 다시 공부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삶이 새롭고 단단해지더라는 것. 세상의 삶이란 이처럼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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