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52) 제주 우도등대

우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소재지 섬이다. 성산포에서 북동쪽으로 3.8㎞ 해상에 떠 있다. 면적은 5.9㎢, 해안선 길이는 16.1㎞이다. 우도는 대부분 평탄한 용암삼각주로 되어 있는 화산도이다. 섬의 높이는 대부분 30m 이내로 구릉지와 평지로 이뤄져 있다.

우도 전경

 

제주도는 62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가장 큰 섬이다. 성산포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떠나는 섬이어서 ‘섬 속의 섬’으로 불린다. 섬 모양새가 드러누운 소를 닮았다고 해서 우도라고 부른다. 성산포에서 배를 타고 떠날 때 우도 앞 바다 중간 지점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소의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97년 국가 소유의 목장이 설치되면서 부터다. 1986년 4월에 우도면으로 승격됐고 4개리, 12개 자연마을로 구성됐는데 2019년 현재 1,006세대 1,86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다른 지역 섬과는 달리 계속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이다. 바다에서는 고등어, 갈치, 전복이 많이 잡힌다.

우도팔경 동안경굴

 

우도 해변은 물속에서 서식하는 석회조류 중 하나인 홍조류가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홍조단괴를 형성해 비경을 연출한다. 홍조단괴가 태풍에 의해 바닷가로 운반되어 퇴적물을 형성한 홍조단괴해빈은 수백 미터의 해안선을 이뤄 그 희귀성과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햇볕이 내리쬐면 눈이 부실 정도로 해변이 빛난다.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돼 있다.

일명 산호사 해수욕장으로 불리는 우목동해안의 사구는 우도팔경 중 하나인 서빈백사(西濱白沙)로 이런 신비로운 해조류가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이다.

우도등대 아래 해안 끝자락인 검멀레 일대에는 흑로, 매, 가마우지, 바다직박구리, 칼새와 번식조류의 안전한 번식 터이다. 주변 해역은 해양조류인 논병아리, 슴새, 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괭이갈매기, 재갈매기 등의 활동 영역이다.

검멀레해안

 

우도에는 쥐똥나무, 초피나무, 버즘나무, 봉선화, 문주란, 돈나무, 섬향나무, 동백나무, 사철나무 등 310종의 식물이 서식한다. 해안 동식물은 검은 따개비, 좁쌀무늬총알고등이, 구멍갈파래, 갈색마디말, 우뭇가사리 등 293종이 서식한다.

우도의 해저지형은 매우 특이한 형태를 보이는데 서쪽 해저는 제주도와 우도 사이인 종달반도와 상선반도에서 이어지는 우도수로가 위치한다. 최대수심 20.7m, 평균수심이 15m인데 우도수로 중앙부는 22m 골짜기이고 해안가에서 바다로 약 3km 정도 나아가면 100미터 이상으로 깊어진다.

조선 성종 18년 그러니까 1487년 9월에 제주3읍 추쇄경차관의 임무를 띠고 제주도에 왔던 최부는 탐라35절의 연작시를 남겼는데 21절 내용이다. “바다가 토해낸 상서로운 산, 운치 있는 볼거리요/용이 서린 우도 섬엔 안내 자욱 좋은 징조라네/산천이 나를 반겨 떼배여 어서 오라 하니/나 또한 신이 나서 손짓하며 돌아오네”

성산포와 우도 선착장 사이를 건너는 철부선의 소요시간은 15분이다. 노을이 젖어들 무렵 우도 앞바다 풍경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이 작은 해협은 제주해협의 위용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나는 섬사랑시인학교 우도등대 캠프를 계획해 서울에서 항공편으로 이동해 성산포에 이렀다가 물살이 가팔라 끝내 건너지 못하고 돌아선 적이 있다. 바람과 안개가 막아선 그 모습 앞에서 “신이 나서 손짓하며 돌아오네”라는 말을 실감했다.

우도등대

 

일제강점기 때 이 해협을 건너려다가 일본인들은 수없는 조난사고를 경험했다. 결국 일본은 우도에 등대를 건립토록 조선 정부에 명했다. 등대를 짓기 위해 물자를 운반하면서 파도에 애를 먹었다. 악천후 탓에 작업 중단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레 공사가 늦어졌는데 일본군은 관용어선을 타고와 우도 등대 공사를 하는 우리 인부들을 모두 해고했다. 그런저런 사연을 안고 1906년 3월에 우도등대는 첫 불을 밝혔다.

등대는 우도 최고봉인 우도봉에 113년의 세월 속에서 앞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을 살피며 우뚝 서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잘 단장한 솔숲이다. 182계단을 오르면 등대원 사무실, 다시 20계단을 더 오르면 등대다.

우도등대는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불을 밝혔다. 맨 처음에는 우도봉 절벽에 석유 등불을 기둥에 매달았다. 해방 후 등대의 모습을 갖췄고 2003년 11월에는 우리 기술로 새로운 원형 대리석 구조물의 등대를 세웠다. 일제 스토리를 담은 옛 등대는 역사적 문화유산으로 보존키로 했다.

우도등대 입구

 

우도등대는 2006년부터 일반인들에게 널리 개방하고 등대체험이 가능토록 등대공원과 쉼터를 만들었다. 이른바 등대해양문화공원이다. 2012년 11월 9일에는 등대음악회를 개최했다. 여행자들은 등대에서 제주무용과 민요 등 흥겨운 우리음악을 즐겼다.

우도는 해녀 역사와 문화가 뿌리가 깊은 섬이다. 등대가 세워진지 30년 후인 1932년에 우도 해녀들은 자신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일본인들이 상인조합과 야합해 착취하자 격분해 수백 명이 항일 봉기를 일으켰다. 유례없는 섬 여성들의 항일운동을 기리고자 우도포구에는 해녀상과 해녀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날의 역사와 문화적 숨결은 해녀잠수, 노 젓는 소리, 잠수소리, 해녀민요 등 해녀민요공연으로 그 곡절을 예술적으로 승화해 대대로 전승되고 있다. 나는 그날 풍랑주의보로 우도 등대캠프가 어렵게 되자 바람이 멎은 반대쪽 해상에서 유람선 공연장을 꾸려 시인과 행사 참가자들과 함께 감동적인 우도 해녀공연을 관람했다.

해녀 공연

 

1932년 해녀항일운동 때 우도 출신 강관순 씨가 작사한 해녀 항일가의 노래는 이렇다.

“우리는 제주도의 가이없는 해녀들/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저 바다에 물결 위에 시달리던 이내 몸//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 되면 돌아와/어린 아이 젖 주면서 저녁밥을 짓는다/하루 종일 하였으나 버는 것은 기막혀/살자하니 근심으로 잠도 안 오네//이른 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코/온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고/파도 세고 물결 센 저 바다를 건너서/기 울산 대마도로 돈벌이 가요//배움 없는 우리해녀 가는 곳마다/저놈들은 착취기간 설치해놓고/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간다/가이없는 우리해녀 어디로 갈까”

해녀들은 우도에서 착취당하는 것은 물론 18세 몸으로 한산도, 가옥도, 제주일대를 떠돌다가 마침내 돈 더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본까지 가게 됐다. 노동만 착취당했다. 그 해녀 노래 중 우도를 그리워하는 노래도 있다. “가냘픈 생명선은/저 바다에 달린 몸/그리운 바다/쓸쓸한 고국산천/제주도는 사백리/무궁화 피는 산천/갈매기 우는 바다/그리운 바다”

우도등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우도 걷기코스는 해녀 노래비 앞에서 시작된다. 제주 올레 1-1코스가 우도 16.1km 구간이다. 약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올레 코스는 천진항→쇠물통 언덕(0.8km)→서천진동(1.4km)→홍조단괴해빈해수욕장(2.2km)→하우목동항→오봉리 주흥동 사거리(4.4km)→답다니탑(5.8km)→하고수동 해수욕장(7.7km)→비양도 입구(8.7km)→조일리 영일동(11.8km)→검멀레해수욕장(12.7km)→망동산(13.6km)→꽃양귀비 군락지(13.9km)→우도봉정상(14.3km)→돌칸이(15.4km)→천진항 16.1km구간이다.

쇠물통 언덕, 마을 속으로 가는 옛 돌담길, 다시 들판으로 가면 호밀과 보리, 우도 특산물로 부상한 땅콩이 자라는 밭둑길 올레가 이어진다. 우도봉 산책길 코스는 직진하면 등대와 전망대이고 거기서 해안선을 타고 내려갈 수 있다. 올레 코스는 해수를 담수로 만드는 우도 저수지 옆길을 지나 우도봉으로 오르는 코스인데 이 길에서 양귀비꽃과 크림손클로버로 뒤덮인 아름다운 초원을 찬찬히 둘러볼 필요가 있다.

노을 속 우도 막배

 

우도 8경은 제1경이 섬 남쪽 어귀의 수직절벽 광대코지, 제2경은 밤 고깃배의 풍경, 제3경은 포구에서 한라산을 바라본 풍경, 제4경은 우도봉에서 바라본 우도 전경, 제5경은 성산봉에서 본 우도의 모습, 제6경은 포구에서 바라본 광대코지, 제7경은 동쪽 해안의 고래굴, 제8경은 서쪽의 흰 모래톱인 바로 이 산호 백사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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