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50) 함석헌,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함석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전문

대학로 함석헌 시비

 

독립운동을 위해 “만리 길 나서는 길”에 온 가족을 맡길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 사람은 뭇 존경과 정의로운 삶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런 사람,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저만은 살려 두거라”고 요구하고 요구받을 상대는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다. 이 시 구절은 이기주의와 기만과 배신이 여반장인 난장판 사회와 오버랩되어 더더욱 절절하고 애를 끓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갈등을 조정하고 꾸중하는 어른이 없다. 공방과 주장만 난무하고 배려와 존중이 사라졌다. 언젠가는 부디 함석헌 선생이 읊조리던 그런 세상, “‘저 하나 있으니’ 하며/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으련만...

함석헌 선생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 평생 인권운동가, 언론인, 재야운동가로 활동했다. 호는 씨알, 바보새. 19세에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한 후, 소학교 교사 등을 전전하다가 오산학교 교사를 지냈다.

선생은 해방 후 월남, 1956년부터 장준하 선생 천거로 <사상계> 논객으로 활약했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제목의 정부정책을 비평한 칼럼이 유명하다. 1970년 월간 잡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해 장준하 선생 등 재야언론인들이 주요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1980년 1월 군부독재에 의해 폐간됐다.

저서로는 ‘인간혁명’, ‘역사와 민족’, ‘뜻으로 본 한국역사’, ‘통일의 길’, ‘함석헌 저작집’, 시집 ‘수평선 너머’ 등이 있다. 1979년, 1985년 2차례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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