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옹진군 영흥면 부도등대

인천 앞 바다 섬 가운데 백령도 다음으로 큰 섬이 영흥도다. 영흥도는 2001년 1.25㎞에 이르는 영흥대교가 생기면서 승용차를 타고 대부도~선재도~영흥도까지 3개의 섬을 연달아 건너갈 수 있는 여행코스가 됐다.

영흥도 영흥대교

 

부도는 영흥면 외리 산 272번지에 위치한다. 영흥도에서 11.8km 거리에 있다. 배를 타고 30분 정도 걸린다. 등대 업무를 지원하는 해양수산부 표지선의 경우는 부도에서 승봉도를 통해 선미도로 빠져 나가는데 그곳 승봉도에서 부도로 올 경우는 40분 소요된다.

부도는 물오리가 두둥실 떠서 낮잠을 즐기는 모양이라고 해서 ‘오리 부(鳧)’자를 따서 부도라고 부른다. 도깨비가 많다고 하여 도깨비 섬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뭍으로부터 오랫동안 외롭게 떠 있는 섬이다. 도깨비를 쫓기 위해 도깨비가 싫어한 피(血)와 소금(鹽)을 섞는다는 뜻의 피염도라고도 불렀다.

부도 등대 아래 해안가

 

섬의 지형과 지질은 파도에 깎인 파식대와 해식애가 발달돼 있다. 섬은 침식작용에 따른 해식동굴도 형성돼 있고 이로 인해 해안선이 아주 빼어난 풍경을 하고 있다. 바다에는 파래, 부챗살, 선호말류가 군락을 이룬다. 참굴, 고랑따개비, 바지락, 총알고동, 털보집갯지렁이가 많다. 이런 다양한 해조류가 서식하고 자갈해안이 형성된 탓에 게와 갯지렁이가 많고 이를 먹이로 삼는 우럭과 노래미가 많이 잡힌다.

부도 일대는 낚시 포인트로 유명해 사계절 수많은 어선과 낚싯배들이 장관을 이룬다. 어느 날 프로 낚시꾼이 등대를 찾아온 적이 있는데 등대원 아내에게 “어디에서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느냐?”고 물어 갯바위 쪽으로 안내했는데, 정작 물고기를 많이 잡은 사람은 안내자인 등대원 부인이었다. 등대원 아내는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섬에서 시나브로 먹거리를 준비해야 해서 이 섬의 박사일 수밖에 없었다.

등대로 가는 오솔길

 

해양수산부 ‘무인도서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부도에는 102종의 식물이 분포한다. 식물학계에서 특정식물로 지정한 1등급 갯장구채, 사철나무, 장구밤나무, 피나무, 찰피나무, 보리밥나무, 갯메꽃, 해국, 두루미천남성, 큰천남성이 분포한다. 곰솔, 소사나무, 대나물, 갯방구채, 큰꿩의비름, 장구밤나무, 보리밥나무, 사철쑥, 해국 등도 많다. 특히 등대 주변 해안에서는 한국고유생물종인 개나리, 희귀식물 두루미천남성이 서식한다.

섬 전체가 밤나무, 상수리나무, 음나무, 물푸레나무, 팽나무, 고로쇠나무, 소사나무, 장구밤나무, 보리밥나무 등 활엽수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선착장에서 정상부의 등대로 이어지는 절벽에 망토군락이 분포하고 깨풀, 파리풀, 원추리, 둥굴레, 닭의장풀, 마, 머위, 맑은대쑥, 해국, 개망초, 억새, 칡들이 군락을 이룬다.

부도등대로 가는 길은 왼편으로 걸어가는 오솔길과 오른쪽 해안에 설치된 모노레일을 이용한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표지선이 식량 등 보급품을 선착장에 내려놓으면 마중 나와 있던 등대원들은 이 모노레일을 타고 등대 창고로 물건을 옮긴다.

모노레일로 보급품을 운반하는 장면

 

한 때는 무거운 보급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산길을 돌아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세상이 많이 변했다. 기상악화로 보급선이 오지 못하면 등대원들은 그동안 텃밭을 일구고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해 말린 식재료를 통해 자급자족해야 했다. 세월이 흘러 등대의 성능은 물론 조형미까지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등대는 빼어난 해양문화 공간으로 진화했고 여행자들도 떠 다른 심미안을 맛보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등대도 국민 눈높이만큼 수준이 훨씬 높아졌다. 등대 제품과 작동 시스템까지 독일과 일본 수입품에서 벗어나 순수 우리 기술로 가능해졌다.

팔각정 조류신호기 등탑

 

부도등대에는 팔각정 쉼터가 2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시인묵객들이 목침 베고 하룻밤 묵으며 시를 읊조리고 그림을 그리고 잔디마당에서 한 판 춤을 추고 판소리 한 마당, 하모니카와 기타 연주를 하면서 무인도 추억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혼잣말로 뱉어내는 순간, 옆에 서 있던 해양수산부 한 과장이 “내친 김에 한번 하시죠? 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부도와 우리 부도등대를 더 좋아할 것”이라면서...

그렇게 그 해 10월 마지막 날에 섬사랑시인학교 가을캠프를 부도등대에서 열었다. 깊어가는 가을밤, 등대아래서 등대사랑과 등대정신을 깨달으며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해양체험캠프는 잊을 수 없는 가을날의 추억이 됐다.

부도는 공식적으로 무인도이지만 인천항 관문에 위치해 1904년 4월 다른 지역보다 먼저 등대를 설치했다. 그래서 등대원만 거주한 섬이다. 부도등대는 석조 원형의 하얀 등대로 돌을 축성하여 만들었는데 조형미가 뛰어나다. 거센 풍파를 이겨내고 115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온 부도등대야말로 소중한 근대유산이 아닐 수 없다. 높이 15.2m에서 비추는 등대 불빛은 50km 먼 바다를 밝혀 15초에 한번 씩 깜박깜박 섬의 위치를 알려준다.

부도등대 선착장표지선

 

작은 섬의 등대이지만 나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국내 최초로 빛을 회전하며 비추는 등명기는 국산 프리즘 렌즈를 사용한다. 또한 부도 앞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매우 커서 선박운항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 등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계곡물처럼 급류가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조난사고를 막기 위해 등대로부터 3km 전방에 조류측정기를 설치하여 접근하는 선박에게 변침지시를 전달한다. 그렇게 등대 앞 절벽 위에는 조류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할 수 있는 조류신호시스템이 국내 최초로 설치됐다. 등대에서는 실시간으로 항해자에게 조류정보를 제공하여 안전운항을 돕고 있다.

등대원들은 조난사고자를 구출하기도 했다. 2007년 7월14일 승봉도로 피서를 온 50대의 최기섭씨 일행 4명은 밤 10시경 고무보트를 이용하여 낚시를 하다가 방향감각을 잃고 모터보트까지 고장 난 상태에서 어두운 밤바다를 7시간 표류했다. 그러던 중 등대 불빛을 보고 다음날 새벽 2시경 부도등대를 찾았다. 등대원들은 그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고 어선을 이용하여 승봉도 가족 품으로 무사 귀환케 했다. 부도 등대원들의 구조 소식은 조난을 당한 이들이 해양수산부 홈페이지에 감사의 글을 올리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부도등대 한 등대원은 “이곳은 무인도지만 그 위치의 중요성에 걸맞게 항로표지의 주요기능인 빛의 파장, 전파의 세기, 소리 파장의 크기가 완벽한 3박자를 갖춘 등대를 보유한 아주 유서 깊은 섬을 지키는 자부심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렇듯 부도는 작지만 인천항 관문을 오가는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돕는 길라잡이로서 매우 중요한 등대섬이다. 특히 영흥도, 선재도, 승봉도 해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어민들과 낚시꾼 등 새로운 해양레저시대를 즐기는 국민들의 안전항해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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