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62)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등대

죽변은 강원도 산등성이 돌고 돌아가는 해안선을 타고 달리다보면 평야지대로 막 내려서는 지점에 있다. 죽변은 면소재지로서 2019년 11월 현재 7,000명이 거주한다.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하여 ‘죽변’이라고 부른다.

죽변 방파제 등대

 

동해, 삼척을 지나 행정구역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바뀌는 곳이다. 7번국도 꼭짓점 해변이다. 죽변 바다는 강원도 여러 굽은 산길을 돌아 마치 고지대 막힌 수도꼭지가 터지듯이 낮은 지대에서 상쾌한 해조음으로 출렁인다. 호미곶을 제외하고 동해안에서 바다로 가장 많이 뻗어 있는 곳이 죽변곶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죽변곶으로 기록돼 있는데 죽변곶 봉우리 일대는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화살의 소재로 사용하기 위해 보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구가 연안을 침범하여 노략질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 신라 때부터 보루성을 구축하고 화랑을 상주한 곳이다.

1925년부터 1942년에는 동해안 황금어장시대로 정어리 풍산지로로 유명했고, 1942년경부터 1945년까지는 조류 변동에 따라 정어리가 사라지고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오징어가 대량생산됐다. 죽변등대 동쪽 연안을 중심으로 오징어 산란 부화 서식지가 형성되어 그 명성이 높았으며 성어기에는 어업 인구가 증가해 붐볐다.

울릉도에서 동해안 내륙까지는 죽변항이 제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또 죽변항이 포항~죽변~울릉도를 잇는 연락선 경유지로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까지 지속됐다. 그러다가 6.25발발로 운항이 중단됐고 그 후 1987년 5월 30일자로 후포~울릉으로 항로가 변경됐다.

죽변항은 동해안 중심어장으로 동으로 128km에 울릉도, 남으로 124km에 포항, 서쪽으로 120km에 영주, 북으로 115km에 강릉까지 그 거리가 비슷한 중앙지점에 위치한다.

죽변 백사장

 

그날 죽변 앞바다는 때마침 뜨겁게 노을을 풀무질 중이다. 나그네도 바다의 수채화 속에 한 점 섬이 된다. 진종일 어부들의 등허리를 따뜻하게 달래주던 태양이 탁, 트인 여백의 백사장에 한 점 섬이 된 이방인과 따사로운 눈길로 전율한다. 뒷걸음질 치던 노을이 마지막 수평선 밖으로 스러질 즈음에는 온 바다가 자디잘게 부서지던 노을빛으로 장관이다.

괜스레 눈물짓게 하는 바다. 여행은 이런 소소한 것까지 사랑하고 눈물지으며 감동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노을이 뚝, 지고 나니 더욱 적막하다. 어릴 적 고향 바닷가에서 하모니카로 클레멘타인을 불던 그 파노라마를 되돌려주던 죽변바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서 오막살이 집 한 채~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집집마다 절반 정도만 건조한 오징어, 일명 피데기를 마당에 빨랫줄처럼 널어두었다. 영락없이 남쪽 고향바다 그 어촌 풍경이다.

포구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노을이 지핀 불씨를 물고 죽변 방파제 등대가 일제히 저녁 불빛을 당겼다. 홀로 그 바닷가를 한동안 걸었다. 연신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는 세상만사 굽은 것은 다 펴면서 살라한다. 바다는 하루에 썰물과 밀물로 두 차례 물갈이를 한다. 사는 일은 다 채우기 전에 꼭 한번은 비우라는 삶의 상징이다. 썰물이 아름다운 것은 떠날 때 떠날 줄 알기 때문이다.

하룻밤이 지났다. 바다여행은 부지런해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고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본다. 일출 전에서 일출까지 방파제는 갈매기 떼들이 모여든다. 고깃배가 드나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자연 그대로의 죽변의 아침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 바라 본 어촌풍경은 송편과 반달처럼 곡선의 아치를 그리고 있다. 곡선의 삶을 지향하는 갯마을 사람들의 삶을 함축하는 듯 했다.

죽변 바다를 드넓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죽변 유인등대이다. 죽변 포구마을과 먼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선다. 등대는 울진 북단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1번지에 우뚝 서 있다. 동해를 운항하는 선박의 길라잡이이다. 1910년 11월에 세워졌다. 하얀색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로 8각형 등탑의 높이는 16미터. 20초에 한 번씩 불빛을 깜박인다. 그 불빛은 자그마치 37Km 먼 바다에까지 가 닿는다.

죽변 등대

 

죽변등대는 울릉도 등대가 불빛을 멈추는 동해 중간지점에서 불꽃을 물고 돌아간다. 즉 동해바다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죽변등대와 울릉도등대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동해 밤바다를 밝혀주고 있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은 경우 사이렌으로 신호음을 보낸다. 50초에 한 번씩 5초 동안 길게 소리를 울린다. 그 소리는 3.7km 해상의 선박에게까지 가 닿아 항구의 위치를 알려준다.

등대로 가는 길은 산죽이 우거진 오솔길이다. 이런 길에 더 취하고 싶다면 등대 위쪽으로 가면 사람 키를 넘기는 대숲의 궁전이다. 이름하여 ‘용의 꿈길’이다. 애오라지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만 꿈꾸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실제 용암으로 둘러싸인 용소가 있고 주민들은 ‘용이 노닐면서 승천한 곳’이라고 해서 용추곶이라 부른다. 신라 때는 화랑이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이 대숲에서 진을 쳤고, 임진왜란 때는 주민들이 이 대숲에 모여 화살을 만들었다.

죽변 갈매기 합창

 

죽변등대는 죽변항 일대를 조망하는 전망 포인트이기도 하다. 등대 아래쪽으로 펼쳐진 해변은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파도와 파란 하늘, 양 옆을 감싸고 있는 언덕배기와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이곳은 2005년 3월부터 5월까지 방영돼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태풍 속으로’촬영 무대이다. 현재 그 세트장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울진군은 2016년까지 등대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등대 주변 대나무 숲길 산책로를 개설하고 울릉도 전망대를 만들어 등대 주변을 죽변의 새로운 명소로 단장했다.

다시 죽변항 식당가로 향했다. 길은 좁지만 다닥다닥 붙은 작은 횟집들이 이색적이다. 3~5만 원짜리 모듬회 한 접시면 광어, 우럭, 도다리세꼬시, 오징어, 가자미 등 싱싱한 회들을 수북이 나온다. 쥐치와 숭어가 잡히는 철에는 이를 공짜로 곁들여 준다. 대부분 자연산이다. 밑반찬으로 성게, 문어, 꽃새우, 조개탕, 골뱅이와 이 지역 특산물인 고포미역까지 곁들여준다. 죽변항의 성게는 일본으로 수출하는 특산품이다. 문의: 죽변면사무소(054-789-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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