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스타 우지원 씨가 태국 현지꾼이 낚은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를 들어 보인다.(사진=월간낚시 제공)

 전 세계 가물치 낚시 마니아라면 꼭 한번 낚아보고 싶은 꿈의 어종이 있다. 전 세계 37종의 농어목 가물치과 어류 중 두 번째로 큰 종인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쉬’가 그것이다. 한국의 가물치(노던 스네이크 헤드 피시)가 1m까지 자란다면,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는 1.3~1.5m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는 단 한 마리를 걸어도 그 씨알이 크고 포악하기로 유명한 육식어류라 손맛이 아주 강렬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 물고기를 직접 낚기 전까지만 해도 왜 이것이 꿈의 어종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태국 가물치낚시 전문꾼, 뚜이 씨

민물낚시 경력이 거의 없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베이트 캐스팅과 루어 낚시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이번 촬영이 부담이었다. 생소한 장비와 생소한 낚시방법으로 방송 촬영을 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준비할 시간도 너무 촉박했다. 베트남 촬영을 마치고 이제 막 한숨 돌리고 있었는데, 다른 팀에서 섭외가 들어온 것이다. (성난 물고기는 여러 팀이 돌아가면서 촬영하는데 담당 PD의 성향에 따라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EBS1 <성난 물고기>는 시즌 2부터 해외로 완전히 콘셉트를 잡았다. 그 탓에 일단 출국을 하면 기본이 열흘 일정이다. 이 기간에는 사실상 개인 업무가 마비되므로 미리 해놔야 할 일은 최대한 해결하고 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서둘러 태국으로 떠났다.

태국 도착 다음 날, 우리는 곧바로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 낚시를 위해 전문가의 집을 찾아갔다. 뚜이 씨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그러면서 시간 날 때 틈틈이 낚시를 즐기는 태국의 프로 낚시인이다. 그의 집에는 온갖 낚시장비가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다. 낚싯대 부터 각종 루어를 수납한 액자까지, 우리는 그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느꼈다. 실제로 뚜이 씨는 태국에서 매우 유명한 낚시 클럽을 이끌고 있기도 한다. 그가 주로 즐기는 낚시는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이지만 바다낚시도 즐긴다.

우리는 뚜이 씨 일행과 함께 그들이 안내하는 비밀 포인트로 향했다. 비밀 포인트는 방콕에서 자가용으로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호수였다.

호숫가에 도착하자 원주민들이 낚시를 마치고 철수를 하고 있었다. 습지가 잘 발달해 있고, 무엇보다도 흐르지 않은 고인 물가라는 점에서 대왕 가물치 서식처로는 제격이란 느낌이다. 호수 근처에는 이 사람들이 운영하는 펜션이 있다. 팬션은 주로 낚시 캠프로 이용된다.

나는 가물치 낚시를 잘 모르지만 기본적인 어류 상식으로는 아침 해 뜰 때와 일몰 시각에 맞춰 입질이 왕성할 것이다. 실제로 확인한 결과도 그랬다. 게다가 이날은 구름이 잔뜩 껴서 주변 조도가 일찌감치 어두워진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해질녘 피딩 타임이 좀 더 당겨질 수도 있는 분위기다.

호수의 풍경은 참으로 수려하다.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꽤 커다란 뱀이 습지를 누비고 다닌다. 주변이 코브라 서식지라 숲속을 걸을 때는 워커를 신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현지 사람들은 코브라가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어쨌든 코브라가 서식할 정도의 야생 호수에서의 낚시라. 기대가 된다.

고백컨대 이때 베이트 캐스팅 첫 경험

PE합사와 쇼크리더를 연결한 노트도 제대로 해 놨다. 참고로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 낚시는 그렇게 굵거나 강한 낚싯대를 쓰지 않는다. 루어대 중에서는 배스낚시용 헤비(H)대 정도가 알맞다고 한다. 바다에서 쓰는 농어대도 충분한데 다소 투박한 느낌이다. 합사는 3호가 감겨 있고, 나이론 쇼크리더 역시 3~4호 정도를 쓴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뚜이 씨의 태클을 열어봤다. 각종 루어가 담겨 있다. 세분화하면 스피너 베이트, 미노우, 섀드 플러그 등등. 사진에는 없지만 버즈 베이트와 플로그(개구리)까지. 그의 태클은 루어 만물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첫날 우리에게 주어진 오후 낚시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이 시간이 지나면 해가 지고 녀석의 입질도 끝난다. 그러니 시간이 많지 않다. 과연 이 짧은 시간에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를 볼 수 있을까. 물론 내일은 온종일 낚시라 기회는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빨리 낚아서 촬영 분량을 확보한 다음 내일은 좀 더 편안하게 낚시를 즐기고 싶었다.

이날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를 위해 뚜이 씨가 우리에게 추천한 루어는 블루와 옐로우가 섞인 ‘섀드 플러그(Shed Plug);였다. 그러나 낚시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사실 나는 베이트 캐스팅이 처음이다. 평소 익숙한 갯바위 릴 찌낚시 캐스팅으로 하자니 채비가 제대로 날아가지 않는 것이다. 선상에서 참돔러버지깅(타이라바 낚시)만 해 본 우지원 씨는 캐스팅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나보다 더 당황했으리라. 문제는 가물치 낚시란 게 정확한 캐스팅이 되지 않으면 낚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특이한 낚시

대상어의 피딩을 유도해서 낚아내는 여타 루어낚시 대상어종과는 달리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는 모성 본능을 자극해서 입질을 유도하는 매우 특이한 방식의 낚시다. 먼저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를 낚으려면 호숫가 표면에 생기는 보일링부터 찾아야 한다. 이 보일링은 자이언츠 스네이크 피시의 치어 무리로, 지름 50cm 정도의 원반 형태다.

자이언트 스네이크헤드 피시는 아가미로도 호흡하지만 날이 좋으면 수면으로 올라와 공기호흡을 한다. 아가미 뒤에 있는 특수 기관이 공기 호흡을 돕는다. 여건이 맞으면 약 30~40초 간격으로 보일링이 형성된다. 그 치어 무리 아래에는 늘 어미가 도사리고 있다. 치어를 건드리는 녀석은 가차 없이 물어 죽인다.

같은 치어라도 이왕이면 작을수록 모성 본능이 크다. 손바닥만 한 치어는 어느 정도 자랐으니 어미가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들지 않는다. 몸길이 10cm도 안 되는 새빨간 치어 무리는 반드시 어미가 지키고 있어 그곳은 히트 확률이 높다.

우리는 새빨간 치어 무리를 찾아다녔다. 보일링을 발견하면 재빨리 캐스팅한다. 이때 채비는 보일링 2~3m 뒤에 착수하는 정확도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 미노우나 섀드 플러그를 끌면서 치어 무리를 정확히 가르면 그 밑에 있던 어미가 루어를 덮친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20~30번씩 정확히 던져도 한두 번 입질이 들어올까 말까 한 확률이다. 이 확률을 높이려면 캐스팅 비거리와 정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변수는 타이밍이다. 지름 50cm 전후의 보일링이 원반 형태로 떠오르다가 사라지는 시간은 고작 10초 남짓. 언제 어디서 보일링이 생겼다가 사라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뒤늦게 발견하고 던지면 이미 늦다. 보일링이 생기는 즉시 던지면 2~3초 정도 소요된다. 나머지 7~8초의 시간 동안 입질 받을 확률이 올라간다. 즉, 보일링이 생기고 나서 3~4초 뒤에 던져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 낚시는 비거리, 정확도, 타이밍 등 완벽한 기술을 요하는 매우 까다로운 낚시다. 이걸 빨리 터득하지 않으면 아무리 뚜이 씨가 옆에서 조언해 주어도 허사일 것 같다.

그런 가운데 뚜이 씨가 거대한 녀석을 걸고 싸웠는데, 수면에 거의 올렸을 즈음 채비가 빠지고 말았다. 조용한 호숫가에는 안타까운 탄식이 흘렀다. 이 상황에서도 나는 캐스팅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빨리 촬영을 마무리하고 내일은 편하게 즐겨야겠다’는 생각은 지운 지 오래다. 캐스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를 볼 일이 없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들었다.

한 마리 걸고 채비를 터트린 후 입질은 완전히 끊겼다. 이제는 보일링도 없다.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가 위험을 감지하고 이 부근을 벗어난 것이다. 정말 영리한 녀석이다. 이후 우리는 양식장 근처를 노리기 위해 버즈 베이트를 던졌다. 던지고 감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쇼트 바이크가 발생했다. “퍽” 하는 소리와 동시에 수면에 물 파장이 크게 일었다. 뚜이 씨는 양식장 근처에 은신하는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라고 말한다. 루어를 완전히 삼키지 않고, 경고의 의미로 쫓아내는 정도라 완벽한 바이트가 되지 않았다는 거다.

반드시 낚아야 한다는 강박의 스트레스

다음 날 아침. 새벽 2시에 일어난 우리는 다시 한 번 어제의 격전지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일출이 시작된다. 안개가 짙어 배를 띄울 수 없다. 그렇게 안타까운 시간이 흘렀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 드디어 배를 탈 수 있었다.

나는 이날 오전에 10kg 정도로 추정되는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를 걸었다. 물안개가 걷히자마자 출조를 감행했는데 녀석들의 활성도가 대단히 좋았다. 여기저기서 보일링이 생겨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질이 없는 것이다. 옆에 배를 모는 뚜이 씨 일행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다가 철수 한 시간 전에 덜컥하고 입질이 들어왔다.

그런데 드랙을 꽉 잠가놔서 낚싯대가 배 밑으로 고꾸라진다. 녀석의 힘을 분산시키려면 서둘러 베일을 열어야 하는데 낚싯대를 빼앗긴 상황에서는 그걸 조작할 틈이 없다. 낚싯대가 부러질 위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썸바(클러치)를 눌러 줄을 푸는 것. 그 덕분에 대를 세우고 파이팅을 할 수 있었다. 수면 직전까지 끌어올리긴 했으나 거기서 안타깝게 채비가 벗겨지고 말았다. 아마도 썸바를 조작할 때 팽팽하던 텐션이 무너지면서 가물치의 주둥이에 박힌 바늘이 느슨해진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긴박한 장면이 방송에서는 왜 편집되었는지 나로선 알 수 없다.

모처럼 받은 입질을 놓쳐 마음이 무겁다. 점심식사를 위해 잠시 철수.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다 먹었는데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그래도 오후에는 힘내서 잡아야 하니 지금은 좋든 싫든 먹어야 한다.

그런데 갑작스레 비가 퍼붓는다. 지금은 1분 1초가 아깝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스콜이라 여겼는데 구름이 점점 모이더니 장대비가 쏟아진다. 이때가 오후 2시. 해가 지기 시작하는 5시 30분에는 입질이 끊긴다. 내일부터는 다른 촬영 일정이 잡혀있다. 남은 2~3시간 동안 이 거대한 녀석을 잡아내지 못하면 이번 방송도 ‘결국 대상어를 보지 못 했다’로 결론 내야 한다.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다.

비는 오후 3시가 돼서야 그쳤다. 발만 동동 굴리던 나와 제작진은 남은 두 시간 안에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야 한다. 뚜이 씨는 오전 낚시를 마치고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그도 촬영팀이 반드시 자이언트 스케이크 헤드 피시를 낚게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 거다.

내가 뚜이 씨를 보면서 그 열정에 감탄한 건 단순히 그의 장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끝까지 책임지고 낚게를 하겠다는 책임감이 느껴져서다. 뚜이 씨는 근래에 보았던 몇 안 되는 진정한 낚시꾼이다.

우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배를 나누어 탔다. 뚜이 씨와 우지원 씨가 한 팀, 나는 현지 코디네이터와 함께 배를 탔다. 지금 당장 포인트로 가서 낚시를 해도 될까 말까인데 출발 신을 찍기 위해 드론을 날려야 한다. 이렇게 되면 배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피디를 태우고 나가야 한다. 무려 30분을 까먹게 된다. 방송 촬영이라 당연히 해야 하는 절차겠지만 지금 이 아까운 시간을….

운이 좋았다. 녀석의 입질은 시작부터 이어졌다. 뚜이 씨가 한 마리 낚으면서 비상이 걸린 촬영이 한숨 돌리게 된다. 뚜이 씨가 낚는 모습을 불과 20~30m 밖에서 지켜본 나는 뭐든 리액션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 성격이 그렇지 못하다. 평소에 고기를 잡아도 과한 리액션보다는 살짝 웃는 정도인데 이게 방송으로 나가면 정말 밋밋하고 싱거운 그림이 됨을 그간의 경험으로 느꼈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종 격전지에서 낚은 이 녀석에게 뭐라도, 하다못해 춤이라도 춰야 할 판인데 내 성격이나 캐릭터 상 그건 좀 아닌 듯하다. 사실 나는 뚜이 씨보다 출연자인 우지원 씨가 녀석을 낚아내길 간절히 바랐다. 낚시 초보 캐릭터인 우지원 씨가 그걸 낚아냈을 때의 그 감동과 환희는 연기하라고 해도 표현하기 힘든 리얼이 아닐까?

그 때문에 나는 ‘결국 내가 낚아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만 커지면서 기분은 더욱 가라앉았다. 이 상황에서 뭐라도 말은 해야겠고 (카메라가 나의 리액선을 기다리고 있다. ㅠㅠ) 해서 했던 말이다.

“한 마리 잡고 너무 시끄럽게 구는데요. 저래서 고기 다 놓치면 어떡하려고. 한 마리 잡고 조용히 해야지 두 마리, 세 마리 잡고 하는 거지.”

그러고 나서 피디의 표정을 보니 나의 리액션에 꽤 흡족해 한다. 정말로 감정에 충실했다면 박수를 치면서 ‘축하합니다’ 딱 한 마디로 끝냈을 텐데 시청자가 보는 관점에서는 좀 더 재미를 유발할 수 있는 감정선이 필요했으리라. 스승으로서의 질투심도 그 중 하나인데, 어떻게 비쳤는지는 모르겠다. 방송이란 참 어렵다.


현지꾼들에게는 순수 스포츠 피싱


뚜이 씨와 우지원 씨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우리는 갈라져서 포인트를 찾아 나섰다. 배를 모는 분이 나에게 개구리 모양의 플로그를 써보라고 권한다. 가물치 낚시꾼들은 잘 알겠지만 플로그는 개구리밥이 무성한 습지에 던져 수면에 파장을 내며 폴짝폴짝 뛰게 해야 한다. 그런데 좀 전에 낚인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는 호수 한 가운데서 낚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플로그보다 호수 가운데를 공략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나는 오전에 쓰다 터뜨린 루어를 달기로 했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포인트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코디네이터의 통역을 통해 그에게 전달됐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호숫가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라 할 만한 보일링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오른다.

이날 나는 호숫가를 한 바퀴 다 돌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구석진 기슭에서 기적같이 보일링을 발견했다. 붉은색 핏빛이 선명한 치어 무리다. 바로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의 치어다. 근처를 둘러보아도 보일링은 이것뿐. 이걸 놓치면 모든 게 끝장이다. 신중히 캐스팅했다. 마음이 급해서 캐스팅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러면 안 된다. 보일링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시간은 불과 10초 남짓. 보일링이 생길락 말락 할 때의 잔잔한 파동을 조기에 발견해 그보다 2~3m 뒤로 정확히 루어를 꽂아 넣어야 한다. 그리고 보일링이 사라지기 전에 케이크 자르듯 정확히 그 한 가운데를 갈라야 한다.

엄청나게 섬세하고 게임성이 짙은 낚시다. 그렇게 20회를 던졌는데 도무지 반응이 없다. 캐스팅은 보일링이 생길 때 딱 한 번 허용된다. 보일링은 같은 장소에만 생기는 게 아니다. 녀석들이 이동하기 때문에 그 경로를 예상하며 수면을 훑어야 한다.

어떨 땐 엉뚱한 곳에 보일링이 생기기도 한다. 마치 나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듯. 보일링과 보일링의 간격이 벌어지는 건 녀석들의 이동속도 또한 빨라졌다는 걸 의미한다. 계속되는 캐스팅에 녀석들이 눈치를 챈 모양이다. 잘못했다간 아예 포인트를 벗어나면서 이대로 끝날 수도 있다.

너무 소란을 피운 걸까. 녀석들이 숨을 쉬려고 올라올 때 바로 채비를 던져야 했지만 나는 일부러 두 타임 쉬어주었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껏 숨을 쉬며 경계심을 누그러트리라는 의도였다. 그렇게 두 번 정도 보일링을 흘려보낸 후 다음 보일링이 눈앞에 일어났다. 배에서 불과 1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정말 녀석들의 경계심이 누그러졌는지 배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보일링이 생기려고 할 즈음 나는 재빨리 채비를 던졌다. 그대로 감아서 보일링을 가를 때 쯤 릴링 속도를 줄였다. 루어가 치어 무리의 정중앙을 가르고 빠져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수면에 물이 튄다.

낚싯대가 고꾸라졌고 나는 온 힘을 다해 버텼다. 오전에 드랙을 너무 잠갔다가 파이팅을 망쳤지만 이번에는 미리 대비를 했다.

‘민물고기 힘이 세면 얼마나 세겠어’ 하던 나의 거만함은 오전 파이팅 때 이미 사라졌다. 지금까지 내가 낚시하면서 정말로 진지하게 싸워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번 녀석에게 나는 사활을 걸었다. 방송에서는 너무 쉽게 끌어올린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드랙을 가져가며 깊숙이 들어간 녀석을 2분이나 싸우면서 올려야 했다. (파이팅에서 2분은 꽤 긴 시간이다.)

수면에 올리자 시커먼 녀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토록 기다리던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다. 이빨을 봤는데 거기에 물렸다가는 손가락이 끊어지겠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는 안 나갔지만 녀석에게 물린 콜라 캔이 바로 박살이 났다.

습식본능이 아닌 모성본능을 자극해 낚아내는 독특한 낚시 기법. 민물고기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강렬한 힘. 위험에 처할 땐 본능적으로 깊은 곳으로 처박는데 그때의 손맛이 꼭 대형 벵에돔 같았던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 나에게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이 녀석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덕분에 손맛도 봤고 방송에서 체면도 살렸다. 나는 촬영을 끝낸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녀석을 놓아주었다. 어미가 잡혀 나간 후 치어들의 보일링이 더욱 격렬했다. 현지꾼 말로는 치어들이 사라진 어미를 찾고 있다는 거다. 그 말에 어찌 방생을 안 할 수 있을까?

참고로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시는 현지인들이 잘 먹지 않는다. 흙내가 나기 때문에 식용으로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저 손맛만 보고 방생하는 스포츠 피싱이다. 덕분에 나도 이제껏 하지 못했던 새로운 낚시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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