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선장이 전화통화 도중 목과 어깨로 휴대전화를 낀 채 입질 받은 대구를 띄워 올리고 있다.(사진=월간낚시21 제공)

“까똑.”
지난 2월 3일 스마트폰 메신저 창이 열렸다. 사진이 떴다. 씨알 굵은 대구 두 마리가 메탈지그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이어 대형 아이스박스에 한가득 담긴 대구도 보인다.
“실시간 조황입니다.”
경북 울진에서 낚싯배 ‘이프로’호를 모는 이영수 선장이다.

연안 바람이 살랑거린다

봄보다 포근한 올겨울. 이렇다 할 겨울 시즌을 즐기지 못하는 꾼들은 지금 동해로 몰리고 있다. 대상어는 대구. 이영수 선장은 올 초부터 대구 출조를 하고 있었고, 3월 초 금어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매일 출조를 한단다.
당장 내려가서 직접 조황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밀린 잡무를 처리하느라 도저히 짬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고, 지난 2월 7일 나는 새벽 1시 반에 경기도 고양시의 집을 나섰다. 
4시간 반을 달려 내가 도착한 곳은 경북 울진군 매화면 오산리에 있는 작은 포구, 오산항. 아직은 어두운 겨울 새벽인데, 배 한 척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고, 그 주위에 대여섯 명의 꾼들이 보인다. 바다루어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동호회, ‘바다루어클럽’의 최무석 회장 등 회원 7명이 오늘의 취재원들이다. 
“어제는 나갔다가 바로 쫓겨 돌아왔어요.”
이영수 선장은 어제 출항하자마자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것이다. 풍랑주의보는 해상에서 바람이 초속 14m 이상의 속도로 불 때 발효된다. 그런데 오늘도 연안 바람이 심상치 않다.
사실 내려오는 동안 걱정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 계속 포근하던 날씨가 이틀 전부터 확 바뀌었다는 게 찜찜함을 더했다. 그나마 오늘은 어제보다는 약간 올랐다는 게 위안거리다.
“오늘도 바람이 살랑 부는데요….”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 정도 바람은 괜찮아요.”
오전 6시 50분. 동녘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올 무렵 이프로호는 오산항을 빠져나갔다. 이프로호는 시속 20노트(1노트는 시속 1.85km, 20노트 = 약 37km/h)의 속력으로 수면을 가르며 동쪽으로 진행한다. 

경북 동해 최대 어장, 왕돌초

40여 분 후 굉음을 내며 달리던 배가 속도를 줄인다. 포인트 부근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여기는 이프로호의 대구낚시 주 포인트인 왕돌초. 
왕돌초는 오산항 남쪽의 후포항에서 직선거리로 23km 떨어진 거대한 수중암초의 이름이다.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이 수중암초는 ‘맞잠’ ㆍ ‘중간잠’ ㆍ ‘셋잠’이라 불리는 세 개의 큰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수심층에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동해안의 보고(寶庫)가 바로 이 왕돌초다. 
조타실 어군탐지기에 찍힌 표층 수온은 13.8도. 생각보다 수온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역시 걱정했던 대로 바람이 만만찮게 분다. 풍랑주의보 수준은 아니지만 기분 좋게 낚시를 할 수 있는 날씨도 아니다. 그래도 이왕 나선 길. 승부는 봐야 한다. 
“조류가 빠른 편입니다. 450g 정도를 쓰세요.”
이영수 선장이 꾼들에게 조언을 한다. 
대구낚시는 바닥권을 노리는 낚시다. 즉, 채비가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속조류가 너무 빠르면 채비를 바닥까지 내리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왕돌초 대구낚시 포인트의 수심은 평균 100m 이상으로 깊다. 100m 이상 깊은 수심의 바닥까지 채비를 내리려면 추(봉돌)가 무거워야 한다. 대구지깅에서 봉돌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메탈지그다. 이 선장은 450g 이상의 무거운 메탈지그를 쓰라고 말하는 것이다.

강풍과 거센 조류에 450g 지그도 낙엽처럼

배 오른편에 나란히 선 꾼들은 이 선장의 말에 따라 450g 메탈지그를 물속으로 내린다. 이윽고 채비가 바닥을 찍으면 낚싯대를 살짝 들어 올려 루어 액션을 준다. 메탈지그에 달린 꼴뚜기 모양의 루어가 대구를 유혹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워낙 세게 불고 조류가 강한 탓에 일단 한 번 바닥까지 내려간 채비로 두 번, 세 번 연속 바닥찍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채비를 살짝만 띄워도 강한 조류에 그 무거운 메탈지그조차 힘없이 떠내려간다.
“바닥을 찍으면 낚싯대를 크게 들지 마세요. 그냥 바닥을 긁는다고 생각하고 채비를 운영해야 합니다.”
이 선장은 애가 탄다. 자신의 배에 탄 손님들이 강한 ‘조륫발’에 적응을 못하는 게 못내 안타깝다. 급기야는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인다.
이 선장의 채비가 바닷속으로 주르륵 내려간다. 이윽고 ‘턱’ 하고 채비가 바닥에 닿는다. 낚싯대를 지긋이 세워드는 이 선장. 메탈지그를 바닥에 붙인 채 낚싯줄의 긴장을 유지한다. 
“왔어요~!”
바로 입질을 받았다. 전동릴 레버를 젖혀 줄을 감는다. 
“위~잉~!”
전동릴 돌아가는 소리가 한참 동안 들린다. 수심 100m의 바닥에서 입질 받은 대구 한 마리를 끌어올리는 데까지 3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섭게 돌아가던 전동릴이 서서히 속력을 늦추고 수면에 뭔가가 비치기 시작한다. 얼룩덜룩한 무늬, 대구가 확실한다. 이날의 첫 조과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갑판 위로 올라와 숨을 헐떡거리는 대구는 50~60cm급 씨알로, 아주 큰 놈은 아니다.
“이 정도가 지금 여기서 낚이는 대구의 평균 씨알입니다. 대신 마릿수가 좋지요.”
이영수 선장에 따르면 날씨 좋은 날 출조를 하면 왕돌초에서 하루 40~50마리의 대구를 뽑아낼 수 있다. 대형 아이스박스 하나는 가득 채운다는 말이다.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꾼들

이 선장의 ‘시범낚시’가 효과를 본 것일까. 10분 후 뱃머리에 있는 포항꾼 최영근 씨가 입질을 받았다. 좀 전과 비슷한 씨알의 대구가 수면에 떠오른다. 곧바로 김기운 씨도 선실 옆에서 60cm급 대구 한 마리를 뽑아 올린다.
“또 왔어~!”
최영근 씨가 연속 입질을 받았다. 한 포인트에서 두 마리를 거푸 걸어낸다. 
입질은 선미에서도 들어왔다. 김영주 씨가 50cm급 대구를 걸어낸 후 다시 입질을 받았고, 아까보다 훨씬 씨알 굵은 70cm급 대구를 올린다.
이때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던 최무석 바다루어클럽 회장도 드디어 입질을 받았다. 수심 120m 바닥에서 4분여 만에 올라온 놈은 비슷한 씨알의 대구. 
“와, 오늘은 너무 힘든 날이네요. 바람이 너무 셉니다. 원래는 한 포인트에서 최소 5~6마리씩은 뽑아내야 하는데….”
최무석 회장은 ‘채비가 바닥을 찍으면 바로 입질을 받을 수 있는 낚시가 대구낚시’라고 한다. 그만큼 쉬운 낚시라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은 날씨가 그걸 허락하지 않아 무척 아쉽다는 거다.
실제로 이날 바다는 너무 거칠었다. 시간이 지나면 바람이 잠잠해질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뱃전으로 밀려드는 너울도 점점 높아진다. 저 멀리 후포항 뒷산이 보이다가 너울이 눈 앞을 가리는 상황. 급기야 뱃멀미를 하는 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2월 한 달이 대구낚시 절정기

오전 11시. 이대로는 도저히 계속 낚시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이영수 선장.
“일단 항으로 들어갑니다. 돌아가서 점심을 먹은 후 상황을 보고 다시 나오겠습니다.”
이때까지, 즉 오전 3시간 동안 조과는 모두 9마리. 이 선장과 김기운 씨, 그리고 김영주 씨가 각각 3마리, 2마리, 2마리를 낚았고, 최영근 씨와 최무석 회장이 1마리씩 낚은 게 전부였다.
우리는 다시 오산항으로 돌아왔고, 여기서 3명의 꾼들은 항복선언을 했다. 나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길이 까마득하다. 이제 남은 꾼들은 이 선장을 포함해서 5명. 
“오후에는 바람이 죽는다는 예보예요. 다시 나가서 오후 5시까지 집중공략 할 겁니다.”
뜨끈한 어묵탕으로 배를 채운 꾼들, 아니 전사들은 대시 배에 올랐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 저녁 7시쯤. 이 선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전 것보다 좀 더 굵어진 대구를 들고 꾼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바람이 잦아들면서 드디어 마릿수 입질이 터지고 있었다.
동해 대구는 3월 한 달이 금어기다. 올해 2월은 보너스로 하루가 더 있다. 앞으로 2월 29일까지 보름 동안이 울진 대구낚시의 피크시즌이 될 것이다. 이프로호의 대구낚시 선비는 12만 원이고, 대여료 2만 원을 내면 전용 낚싯대와 전동릴도 빌려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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