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대가 장덕수 MBN 제작본부장 삶과 방송이야기

장덕수. 그는 방송가에서 다큐멘터리 전문가로 통한다. 1981년 <MBC>에 입사해 ‘인간시대’,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갯벌은 살아있다’, ‘그린랜드 에스키모와의 100일’, ‘세계의 교육 그 현장을 가다’, ‘황사’ 등 걸쭉한 대표작품들을 남겼다. 1995년에는 한국방송프로듀서상 ‘TV대상’, 1997년에는 ‘TV 교양다큐’ 방송대상 등을 수상했다.

나자연 프로 만든 장덕수

 

<MBN> 제작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나는 자연연이다’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그의 작품의 흐름은 늘 자연과 사람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었다. 자연은 나에게,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자연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에게 프로그램의 제작은 늘 이런 물음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그는 자연과 인간의 접점이 무엇인지를 찾은 뒤 비로소 취재에 들어갔다. 그렇게 탄생한 명작이 ‘갯벌은 살아있다’였다. 당시 재방, 삼방까지 이어지며 올해의 프로듀서상 ‘TV대상’ 부문을 수상한 프로그램이었다. 야근 후 <MBC> 사옥 앞 포장마차에서 붕장어에 소주 한잔 걸치면서 안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 그가 태어난 인천 앞바다 갯벌의 환영과 마주쳤다.

그렇게 상상의 모티브는 드넓은 갯벌의 세계로 이어져 더 큰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그런 인문학적 상상력은 카메라 연출기법까지 더해져 자연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드라마보다도 더 감동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방송가에서 누구나 한번쯤 제작 아이템으로 생각해본 것이 갯벌 아이템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갯벌 방송은 재미없는 소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장덕수 본부장 주거지에서 바라본 운악산

 

물론 장덕수 프로듀서 자신도 막상 제작에 돌입하면서 이 대단한 용기(?)에 대한 확신에 반신반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모 아니면 도. 철저히 외면 받는 프로그램을 각오하고 갯벌로 뛰어들었죠. 예상은 빗나갔어요. 갯벌은 정말 신비롭고 오묘했어요. 시청자도 자연의 그 오묘함에 감동했어요.”

이 작품은 단지 갯벌의 촬영에 초점을 맞춘 자연주의에 머물지 않고 갯벌을 매립하는 것이 얼마나 바다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시키고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사회적 메시지도 던져줬다. 언론학자들을 이를 새로운 피디저널리즘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이 선보인 후 몇 년 후인 2000년대 들어 자연다큐, 생활밀착형 작품들이 프로듀서들의 수상작으로 등장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다큐의 대가 장덕수의 영향은 매우 컸던 셈이다.

MBC프로덕션 사장이었던 그는 때 아닌 인사태풍에 휩쓸렸다. 그의 성향은 대체로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PD수첩’ 책임프로듀서 등 방송 프로그램은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진보적 노선의 노조활동도 하지 않았던 그를 이명박 정부는 블랙리스트 언론인으로 분류했다. 그러던 2011년 10월 종합편성채널 <MBN>은 그를 제작이사로 영입했다. 당시 <MBN>은 보도자료를 통해 “장 이사는 MBC 시사교양국장, MBC프로덕션 사장을 거치며 ‘갯벌은 살아 있다’ 등 다큐멘터리와 예능프로그램을 연출하고 드라마 기획 제작을 진두지휘했다”고 평가했다.

가평 골짜기에 자리잡은 조립주택

 

장인정신에 투철한 장덕수 프로듀서의 뒤안길을 보면, 방송에 있어 수작과 졸작의 차이는 무엇일까를 반문하게 한다. 그것은 제작 동기와 제작 결과물의 차이일 것이다. 이 작은 차이가 어떤 큰 결과를 생산하기 마련인 데, 이는 처음도 끝도 제작자 용기와 시청자의 평가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제작자는 맨 처음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일이 중요하다. 제작 과정에서 외부의 선입견과 고정관념과 싸워서 이기는 일도 중요하다. 장덕수 프로듀서, 그의 삶의 여정을 바라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다큐의 대가 장덕수는 “선입견으로부터 거리두기가 좋은 프로그램을 시작”이라고 단언했다. “ 물론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판단이고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선입견에 빠져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십상”이라면서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창 역할을 해야 한다면 자신의 선입견은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죠.”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제작에 대한 지론을 실천하는 다음의 첫걸음은 소재와 주제의 선택이다. “취재할 때는 철저히 선입견을 배제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촬영 후 비로소 주제를 잡고 편집을 구성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어떠한 것도 다 다큐멘터리 주제가 될 수 있고 어떠한 사물도 다 얘깃거리가 될 수 있음으로 특정한 주제란 것은 없다고 본다.”면서 “시청자들 관심의 주변에 있던 소재에 대한 재발견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주사가 '자연인' 최초 기획안을 들고 왔을 때 다른 방송사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채택했다. 초반에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방향을 잡아줬다. 때로는 외주사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을 대폭 수정하기도 하고, 자연인 컨셉에 맞지 않으면 불방결정을 하면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

사실 모든 프로그램은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각자 분야에서 자신이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이 있고, 그는 방송사의 제작총괄로서 기획안을 채택하고 제작의 방향과 정체성을 정해주면서 제작을 지시해나갔다. 그렇게 그는 자연인 프로그램을 탄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 방송을 결정했을 때 방송사 내부에서 모두가 반대했다. 그러나 첫 방송이 나간 후 당시 시청률로는 최고를 기록했다. 경영진은 빨리 2탄을 내보내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장 본부장은 준비된 프로그램이 수준이 이하라고 판단하여 방영을 보류시켰다. 아무리 시청률이 높은 상황일지라도 작품 수준이 중요한 것이고 시청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과 다큐 전문가인 자신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대자연 속의 힐링의 여정을 담는다.”는 명분을 내세운 현재의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호응을 그 때 그만큼 받는다는 할 수 없다. 산 속 거주자들의 탐방일 뿐이라는 혹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사회에서 느림의 미학과 비움의 의미를 잠시 되새김질케 하는 계기를 준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장덕수 전 MBN 제작본부장

 

느릿느릿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그는 얼마 전 긴 시간 술좌석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이른 아침 옹진군 굴업도 섬 산악을 즐기러 떠났다. 그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당사자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훨씬 이전인 <MBC> 프로듀서 시절부터 경기도 가평 상판마을 산골에 움막을 짓고 자연인으로 살았다. 지금은 조립주택으로 주거여건을 개선해 은퇴 후 삶의 터전으로 삶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환갑을 넘긴 삶이지만 이 시간까지도 그는 삶과 방송이 일치된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그는 진정한 방송인이었고 언론인이었으며 원조 자연인이었다. 인터뷰를 한사코를 사양했던 자연인의 움막 앞 계곡물은 그의 삶의 환영과 잔영을 그림자로 담아 천천히 맑디맑은 하늘 구름과 함께 흘러가고 있다. 그 물은 저 들판 저 강물을 적시고 마침내 큰 바다에 이르러 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철썩철썩 우리네 뇌리를 때리면서 또 어디론가 새로운 길트기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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