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⑦ 나태주, ‘대숲 아래서’, ‘풀꽃’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 나태주, ‘대숲 아래서’ 중에서

대숲 아래서

 

나태주 시인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이다. 한 폭의 풍경화다. 초등학교 교사시절 어느 여교사와 실연의 아픔이 배인 시다. 행간마다 연가풍의 실루엣이 나부낀다. 시인은 70~80년대 송수권 이성선 시인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서정 시인으로 꼽혔다. 시인의 서정시편은 흙 내음 풀꽃향기 가득한 향토성과 질그릇의 투박함이 묻어난다.

충남 서천 산골 외갓집에서 태어난 시인은 ‘솔바람 소리’ ‘대숲바람 소리’ 그윽한 막동리 할머니 집에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장학사 시절 관료주의가 싫어 시골학교를 택했다. 그해 가을 공주 상서초등학교 교장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교장실은 아이들 사랑방이었고 글짓기 원고가 수북했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시인은 아이들과 그림그리기 수업을 하고 있었다.

“얘들아, 있잖아. 풀꽃을 그리려면 맨 먼저 내 마음에 드는 풀꽃 한 송이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 풀꽃 한 송이를 열심히 보아야 한단다. 그럴 때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그 풀꽃 하나만 생각해. 그렇게 되면 풀꽃이 점점 크게 보인단다.” “얘들아, 풀꽃을 그려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더냐?” “자세히 보아야 예뻐요.” “천천히 보아야 잘 보여요.” 그렇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풀꽃1’), “기죽지 말구 살아봐/꽃 피워봐/참 좋아”(‘풀꽃3’)라는 ‘풀꽃’ 시리즈 시가 탄생했다. 자연주의자 나태주시인은 그렇게 한 세월을 자연과 한 호흡으로 살아왔다. 풀꽃문학관 관장인 시인의 “바람은 구름을 몰고/구름은 생각을 몰고/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면서 일흔 셋 언덕길을 그렇게 유유히 넘어서고 있다.

박상건(시인. 동국대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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