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강전(展), 천안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10월 14일까지

사진과 그림 그리고 시적 이미지를 가미한 독특한 기법의 ‘서성강전’이 천안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10월 14일까지 열린다.

서성강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96x149-3 소각된 풍경 Inkjet print
96x152-3 벗나무 Inkjet print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존재의 이유가 되고 생동감이 발원한다. ‘꽃’이라고 부르기 이전에는 우주의 공간에 그 무엇이었을 그것은 마침내 빛깔과 향기를 내기 시작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름을 얻고 그 이름으로 인해 이녁의 아우라를 만들고 그렇게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뒤안길은 기억 속의 풍경이 되고 그 아우라는 것은 또 다른 명망가의 길을 만들어 낸다.

길거리의 신호등 불빛을 보고 사람들은 걷거나 정지한다. 항해자는 섬과 등대를 보고 위치를 확인하고 안전항해의 유무를 판단한다. 이처럼 우리는 숱한 기표와 기의 속에서 산다. 그 기표에 의미 담아내고 이를 해독하며 사는 것이 언어의 상호작용이고 의사소통의 구조이다.

누군가에 꽃을 전해주는 순간, 꽃은 하나의 기표이고 이 기의를 담아내 언어와 공간 속에 존재라는 의미작용을 한다. 꽃을 주고받을 때 친구 간에는 우정이 되고 남녀 간에는 연인의 의미로 발전한다.

106x151-3 사과묘목 Inkjet print
111x146-4 함초 Inkjet print

 

서성강 작가의 작품은 사진이라는 과거의 기록, 평면 속 풍경을 통해 이런 의미작용을 일으키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의 기법은 삶과 그 주변 공간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소재를 철학적 미학적 기제로 활용하는 능수능란한 기교를 재발견한다. 그런 소리 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평면의 색감에서 울림과 메시지 등이 입체적으로 그려지고, 그 풍경 속에서 작품 밖의 세상과 저마다의 체험과 상상력을 덧칠하면서 감성과 이성이 살며시 포개지는 색다른 질감을 전해준다.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서성강 작가의 이런 기법에 대해 “사진이라는 형식 외에 색과 노이즈라는 또 다른 형식을 도입하고 그 노이즈는 컬러 스크램블 기법과 더불어 색감과 텍스춰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단색화에 영감을 받아 회화 같은 사진작품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서성강은 80~90년대에 찍었던 다큐멘터리에서 정점을 찍었을 것”이라면서 “현실과 가상이 극도로 교란되는 시대에 그 본질에” 주목하고 “내용과 형식이 두루 포함되는 실험은 없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의 발로”로 분석했다.

111x149-4 수양버들 Inkjet print

 

서성강 작가는 “입체적인 공간, 소리, 냄새, 바람, 햇빛… 그리고 감정이 동화되었을 때 그 사물과 마주한다. 그 사물에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 의미가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에 마주서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작가는 “하지만 이런 환경을 배제하고 인화지라는 평면 위에 색채에 의한 형태만으로 감정을 온전히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인식하는 사진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아날로그 시절 많은 사람들은 변혁의 영상시대를 앞에 두고 평면의 사진과 그림은 그 역할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상은 디지털문화와 접목돼 새로운 사진예술시대를 열었다. 디지털은 0과1이라는 이진법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재현하고 표현한다. 이는 직립인간의 두발과도 같은 원리를 통해 사람의 생각을 다 담아내고 상상의 세계까지 묘사하고 창조해냈다.

디지털스토리텔링은 첨단화가 빨라질수록 원시 부족사회로 회귀하면서 자연 회귀와 치유를 갈망하면서 저마다 소리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그렇게 감성과 휴머니즘 접목되면서 예술은 무한한 공간 속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서성강 작가는 이런 사진예술의 본질을 정확히 진단했고 이를 화폭에 담아내는 실험정신에 천착한 것으로 보인다. 서 작가 역시 “사물이 가지는 물성 그리고 그 자체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사진이라면 이번 전시는 사뭇 다르다.”면서 “물성 자체의 질감과 또는 그 주변의 색채를 변화시켜 사진이 가지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했으며, 시야의 한계에서 오는 고립성을 추상화하여 표현의 범위를 넓히는데 목적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작가의 실험정신을 눈여겨보게 하는 한편, 사진예술의 소재와 진화 폭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성강 작가는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졸업을 했고 1994년 ‘고뇌의 바다 1’, 2009년 ‘고뇌의 바다 2’ 등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졌다. 서 작가는 천안시민의 상, 한국사진문화상, 충청남도 사진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사진작가협회 천안 지부장, 충청남도 협의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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