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연 NS 프로스태프(사진=월간낚시21 제공)
안지연 NS 프로스태프(사진=월간낚시21 제공)

“히트~!”
하얀 물안개를 가르는 낚싯대가 보기 좋게 휜다. 역 U자로 휜 낚싯대를 이리저리 능숙하게 조작하면서 릴을 감는다.
“파닥~, 파다닥~!”
수면에 솟아오른 송어가 바늘털이를 할 때마다 삼색 무지개가 초릿대에 걸린다.

출근 전 하는 운동, 낚시

지난 11월 3일 경기도 시흥의 달월낚시터. 어깨까지 내려오는 빨간 머리카락이 빨간 모자 아래에서 살짝 흔들린다. 두어 번 더 화려한 바늘털이를 선보이던 송어는 이내 체념한 듯 그가 펼쳐 든 뜰채 안으로 들어가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첫 캐스팅에 바로 입질을 받은 사람은 안지연 프로(엔에스 프로스태프).

해가 채 뜨지 않은 오전 6시 반에 만난 안지연 프로는 “여기는 출근 전에 한 번씩 들러 손맛을 보는 곳”이라고 말한다.

만화 작가가 직업인 그는 3년 전부터 배스 토너먼터로도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낚시인이다. “회사(서정엔터테인먼트)가 낚시터에서 가까워 한겨울에도 매일 이렇게 손맛을 볼 수 있는 게 좋다”고 말한다.

코믹 메이플스토리와의 만남

작가로서 안지연 프로를 논할 때 가장 먼저 회자되는 건 만화 ‘코믹 메이플스토리’다. 게임 원작 만화로는 한국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작년에 100권째를 찍으면서 16년 동안 1,8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메인 작가인 서정은 서정엔터테인먼트 대표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안지연 프로는 그러나 그 전에 먼저 낚시와 인연을 맺었다. 지독한 낚시광인 서정은 대표를 만난 게 그 계기였다. 고등학생일 때 만화 그리는 걸 배우고 싶어서 무작정 서정은 작가를 찾아간 후 그의 문하생이 된 것.

“출판사에서 계속 원고 마감을 독촉하는데, 대표(서정은 작가)님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때 안지연 프로가 서정은 작가를 찾아간 곳이 바로 물가였다. 배스낚시를 하고 있던 서정은 작가에게 얼떨결에 낚싯대를 넘겨받았고, 이날 안 프로는 운 좋게도(?) 씨알 좋은 배스 한 마리를 걸어 냈다. 그 짜릿했던 손맛이 그에게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이후 안 프로는 작품활동을 하다가 시간만 나면 낚싯대를 챙겨 들었다. 답답한 작업실을 벗어나서 물가를 걸으며 낚시를 즐기는 것, 그 자체가 그에겐 일종의 ‘힐링’이었다.

“종일 앉아서 작업을 하다 보면 늘 운동량이 부족해요. 낚시는 저에게 좋은 운동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출근 전에 낚시터를 걸으며 손맛을 즐기는 게 제 운동방법이죠.”

배스 프로의 길로 들어선 이유

순간 다시 입질을 받았는지 안 프로가 힘껏 낚싯대를 세워 든다.

“핑~!”

낚싯줄이 팽팽해진다. 수면에 얼굴을 보인 송어는 이내 그가 펼쳐 든 뜰채 안으로 쏙 들어간다.

프로 배서에게 송어 입질은 ‘간지러움’이지만 물속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자신의 의도대로 낚시를 이어가는 모습이 꽤 진지하다. 어쩌면 이 또한 배스 토너먼터로서 트레이닝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나는 안지연 작가가 어떻게 해서 배스 프로의 길로 들어서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고등학생 때 윤리 선생님이 지금의 김미숙 프로(엔에스 프로스태프)님이세요.”

한창 낚시에 재미를 느낄 무렵, 안 작가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김미숙 프로의 활동을 보게 된다.

“너무 반가운 거예요. 선생님, 아니 김 프로님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요.”

안 작가는 바로 김 프로를 만났고, 김미숙 프로와 안지연 작가의 사제 관계는 다시 낚시로 이어졌다. 그리고 3년 전인 2017년, 안 작가는 드디어 프로 배스로 데뷔한다.

더 큰 그림, 루어낚시 만화를 꿈꾼다

“저는 제가 직접 루어를 만들어요. 지금도 직접 만든 웜을 쓰고 있어요.”

그가 보여준 것은 노란색의 작은 섀드 웜. 낚시터 여기저기에 버려진 폐 웜을 모아 녹인 후 재가공한 것이란다. 그러고 보니 그의 테클박스 안에는 비슷한 웜들이 잔뜩 들어있다. 그리고 또 한 켠에 눈에 띄는 게 있다. 올망졸망 작고 예쁜 벌레 모양의 하드베이트.

“아, 이거요? 이건 페트병을 잘라 만든 거예요. 페트병을 작게 잘라서 모양을 만들고 봉돌을 붙인 후 유성 물감으로 그린 겁니다.”

안지연 작가는 배스 토너먼트에서도 자신이 만든 루어를 주로 쓴다고 말한다. 안 작가가 만드는 루어는 기능성은 물론이고, 작품성이 탁월해서 아마추어 배서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실제로 이날 달월낚시터에서도 그의 팬임을 고백하는 중년의 꾼이 안 작가의 루어를 선물로 청하기도 했다. 안지연 작가, 기꺼이 그의 청을 들어주었음은 물론이다.

안지연 작가가 배스 프로로 토너먼트를 뛰고, 직접 루어를 만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지금 이른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루어낚시를 소재로 하는 만화를 창작할 계획이에요. 4년 전쯤 처음 기획했는데, 제대로 된 작품을 위해 루어낚시를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프로 배서의 길은 그에게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여정 중 한 걸음인 셈이다. 낚시만화라는 쉽지 않은 작품의 디테일 살리기 위해 직접 프로 배서의 세계에 뛰어들고, 스스로 루어를 만드는 것이다.

“아마 내년쯤, 늦어도 2년 후에는 발표할 계획이에요.”

루어낚시를 소재로 하는 만화. 나는 그 작품의 스토리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입에서 막 나오려던 그 질문을 꿀꺽 삼켰다. 스포일러를 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 코믹 메이플스토리의 성공을 잇는 작품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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