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에 피어나는 꽃, 마릿수 열기가 줄을 타고 올라온다.(사진=월간낚시21 제공)
겨울 바다에 피어나는 꽃, 마릿수 열기가 줄을 타고 올라온다.(사진=월간낚시21 제공)

“입질 왔어.”

오른쪽 뱃머리 맨 앞자리에 앉은 이재곤 씨가 중얼거린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은 초릿대로 향해있다.

투둑투둑. 투두둑.

초릿대가 불규칙하게 수면으로 꽂히고 있다. 너울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재곤 씨는 초릿대가 까딱거릴 때마다 릴을 한두 바퀴씩 감는다. 카드채비에 달린 바늘 10개에 모두 입질을 받아내겠다는 심산이다. 이른바 ‘몽땅 걸이’를 위한 줄 태우기 작전이다.

“다 탔어, 다 탔어. 이제 감습니다.”

“위~잉~!” 전동릴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원줄이 감기기 시작한다. 이윽고 수면에 울긋불긋 어체가 떠오른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 열 마리. 그렇게 겨울 처마에 달린 곶감 같은 열기(표준명 불볼락)가 대롱대롱 올라온다.

“바람이 심상찮은데…”

지난 12월 5일 오후 12시.

오전 7시 반쯤 강원도 고성의 공현진항을 출항한 돌핀마린호는 4시간 정도를 헤매다가(?) 결국 봉포해수욕장이 보이는 해역 25m 수심에서 마릿수 입질을 받았다.

공현진항의 베테랑 최상용 선장으로서는 몹시 당혹스러운 하루였다. 마릿수 입질을 받기까지 이 정도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던 거다.

그러나 사실 오늘의 악전(惡戰)은 전조(前兆)가 있었다.

오전 5시 10분. 이기선 피싱클럽 버스에서 내렸을 때 공현진항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제법 부는’ 정도가 아니라 깃발이 날릴 정도의 꽤 센 바람이었다. 경험상 이런 날 선상낚시는 고전하기 마련.

“오늘 쉽지 않겠는데….”

이기선 피싱클럽의 이기선 대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게다가 출항 시각도 약간 늦은 편이었다. 최상용 돌핀마린호 선장은 새벽 일찍 도루묵 조업을 했고, 그 갈무리를 하느라 30분 정도 출항 시간을 지체했다. 그렇게 출항한 돌핀마린호가 처음 찾아간 곳은 가까운 송지호 앞 해역.

시작은 훌륭했으나…

“어군은 25m에서 30m권까지 보입니다. 바닥 찍은 후 다섯 바퀴 정도 릴을 감고 시작하세요.”

선실 왼쪽에 있는 주정민 씨에게 가장 먼저 입질이 들어왔다. 제대로 줄을 태운 주정민 씨가 마수거리로 7~8마리의 열기를 걸어 낸다. 곧바로 뱃머리에서도 몽땅 걸이가 연출된다. 그렇게 30분 정도 갑판 여기저기서 소나기 입질이 들어 온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딱 여기까지였다. ‘첫 끗발이 ×끗발’이라고 갑자기 입질이 뚝 끊겼다. 최상용 선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군은 많이 보이는데, 왜 입을 닫았을까…?”

이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송지호 앞 포인트를 꼼꼼히 뒤져보지만 더 이상 마릿수는 없다. 간혹 올라오는 건 열기 두어 마리, 혹은 임연수어 서너 마리뿐.

“채비 걷으세요. 멀리 갑니다.”

40여 분을 달려 돌핀마린호가 도착한 곳은 남쪽으로 18km 정도 떨어진 속초 앞바다.

“어제 여기서 아이스박스의 80%를 채웠어요.”

최상용 선장은 어제 가장 입질이 활발했던 곳을 다시 찾았다.

“여기 보세요. 어군은 쫙 깔려있잖아요.”

실제로 최 선장이 가리키는 어탐기 화면에는 바닥부터 중층까지 빨간 어군이 두툼하게 보인다. 그런데 도통 입질이 없다.

아직은 수온이 높은 편

사실 12월 초 현재 강원도 고성~속초 바다에서 열기가 낚인다는 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 시기면 대구 시즌이 열리거나 어구가자미가 줄을 타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강원 북부 앞바다에서 열기가 낚이고 있다는 건 아직 바다 수온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다. 간간이 이면수어가 비치고는 있지만 그것도 낱마리 수준이다.

“도루묵이 연안에서 많이 잡히는 날에는 대구가 입질을 안 합니다.”

최 선장은 대구의 먹잇감인 도루묵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낚시채비에는 입질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날 공현진항에는 그물에 올라온 도루묵이 파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날 출조팀 중 몇몇은 씨알 좋은 놈으로 골라 현장에서 사기도 했다.

‘어제 대박 쳤던 곳’이 오늘 연타석 홈런을 칠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최 선장이 아껴둔 속초 포인트에서도 낱마리 수준이었다.

수온이 아직 높아서 어구가자미 대신 열기가 비치고는 있지만 열기가 마릿수 입질을 하기에는 물이 찬 모양이다. 어구가자미에게는 수온이 지나치게 높고, 열기에게는 아직 물이 찬 상황인 셈이다. 즉,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황.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정오.

이기선 피싱클럽 이기선 대표가 조황이 궁금했나 보다. 최 선장이 전화를 받는다.

“너무 안 나와서 여기 속초까지 내려왔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네….”

이기선 대표는 애가 탄다.

“될 만한 곳은 다 뒤져서라도 마릿수를 채워보세요. 쿨러 못 채우면 들어오지 마세요.”

협박 아닌 협박이지만, 속이 타는 건 최 선장도 마찬가지다.

“한 군데 더 확인해 봅시다.”

바람 멎자 거짓말처럼 입질 폭발

그렇게 해서 최 선장이 이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봉포해수욕장이 보이는 해역. 그때까지 세차게 불던 바람이 거짓말처럼 딱 멎었다. 그리더니 드디어 마릿수 입질이 폭발했다.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수심 25m 전후 포인트에서 몽땅 걸이 줄태우기가 갑판 위에서 릴레이로 이어졌다.

정오 무렵부터 철수 시각인 오후 2시까지 두 시간 동안 거둔 조과가 오전 내내 받은 입질보다 훨씬 많았다.

“진작에 여기로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어.”

오전 내 허탕을 치던 꾼들의 얼굴이 그제야 환하게 밝아온다. 줄담배만 피워대던 최상용 선장도 휴대폰을 들고 이리저리 뱃전을 다니며 꾼들의 조과를 사진으로 남긴다. 늦은 피딩 타임 탓에 철수가 한 시간 정도 늦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이 없다. 역시 조과가 모든 걸 말해주는 법이다.

오후 3시쯤 공현진항으로 돌아온 꾼들은 낚시마트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는다.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꾼들이 낚아낸 열기와 임연수어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깨끗이 손질을 한다.

12월 초 현재 강원도 고성의 공현진항에는 아직 열기가 낚이고 있다. 겨울 진객 어구가자미는 12월 중순 이후 본 시즌이 열릴 전망이다. 이때부터는 대구 지깅과 함께 출조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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