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내려놓고 운전대 잡은 낚시기자(사진=월간낚시21 제공)
카메라 내려놓고 운전대 잡은 낚시기자(사진=월간낚시21 제공)

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는 아인스월드 주차장. 지난 12월 5일 새벽 12시 반. 드문드문 차들이 주차돼 있는 공터 한쪽에 환히 불을 밝힌 버스 한 대가 보인다.
“김 기자, 일찍 왔네. 여기서 다섯 명 태우고 50분쯤에 출발할 거야.”
이기선 선배, 아니 지금은 이기선 피싱클럽의 이기선 대표가 나를 반긴다. 웃을 때 옴폭 들어가는 왼쪽 눈 밑의 보조개도 여전하다. 
작년 7월, 26년간 해오던 낚시기자 일을 접은 후 그가 선택한 건 출조 전문 회사를 차린 것이었다. 나는 진작부터 이 대표가 운영하는 출조 버스를 타고 현장 취재를 계획했었다. 그러나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1년이 훌쩍 지난 이제야 그가 모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26년 최고참 선배 낚시기자

서로 회사가 달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낚시터 현장에서 이기선 선배를 볼 때면 나는 그에게서 ‘참 부지런하다’는 느낌을 항상 받곤 했다. 나보다 5년 정도 일찍 낚시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기선 선배는 다니던 잡지사(낚시춘추)를 그만두기 직전까지도 열정적인, 최고참 현장 기자였다. 특히 사진에 관한한 웬만한 프로 작가 이상의 실력을 가진 그는 나에게도 자신의 노하우를 귀띔하곤 했다. 
‘역광일 때는 노출을 오버로 놓고 찍어’라거나 ‘셔터 스피드를 5000분의 1정도로 놓고 찍으면 물방울 튀는 것까지 선명하게 나올 것’ 같은 스킬은 내가 현장에서 이 선배에게 배운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카메라와 펜을 내려놓고 버스 운전대를 잡고 있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 버스에 오르는데, 운전석 뒷자리에 한 중년 여성이 보인다. 
“출조 때마다 거의 같이 다녀.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이기선 대표의 부인 주명선 씨다. 
“그냥 여행 삼아 나와요. 졸음운전 감시도 할 겸.”
‘아이고, 이런 새벽에…. 피곤하지 않으세요?’라고 묻는 나에게 형수는 살짝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어서 오세요. 아이스박스랑 낚시가방은 여기 버스 밑에 넣으면 됩니다.”
예약한 손님(낚시꾼)이 도착한 모양이다. 이기선 대표는 손님의 낚시가방과 아이스박스를 받아 버스 아래 화물칸에 싣는다. 아이스박스를 차곡차곡 놓고 그 위에 낚시가방을 올린다. 그 손놀림이 아주 익숙하다. 

“손님들 배에 태워 보낸 후 더 바빠”

오늘의 출조지는 강원도 고성의 공현진항. 열기와 임연수어가 대상어다. 
새벽 12시 50분. 부천을 출발한 버스는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달려 안양 석수체육공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여섯 명의 손님을 태운다. 그리고 또 한참을 달린 후 남양주 체육문화센터 앞에서 비슷한 숫자의 낚시꾼을 태운다. 이때가 새벽 2시 10분. 버스는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려 홍천휴게소에 잠시 들른 후 새벽 5시 10분에 공현진항에 도착한다. 
오늘 이기선 피싱클럽 출조버스를 이용한 낚시꾼은 17명. 예약해둔 돌핀마린호의 승선 인원이 22명인 걸 감안하면 이번 출조는 이기선 피싱클럽의 ‘독배’나 다름없다. 
“저기 맞은편에 보이는 식당 있죠? 가셔서 아침 식사하세요. 그리고 배로 가셔서 미리 낚싯대부터 꽂아두세요.”
이기선 대표는 꾼들에게 미리 예약해둔 식당을 안내하고, 낚시 자리 선점까지 당부한다. 오늘은 배 위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선착순으로 차지할 수 있나 보다. 꾼들은 이 대표의 말대로 일단 식당으로 가서 뜨끈한 해장국으로 빈속을 채운다. 
“낚싯대 꽂고 오셔서 저기 낚시점(공현진 낚시마트)에 가셔서 승선명부 적고, 필요한 채비도 사시면 됩니다.”
겨울바람이 꽤 차가운 새벽 항구에서 이 대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손님들을 챙긴다.
이윽고 서서히 날이 밝는다. 출항시각이 다 됐다. 이기선 대표는 배에 오르는 꾼들의 낚시가방과 장비들을 하나씩 건네주며 어복을 기원한다.
이렇게 북새통 같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 대표는 겨우 한숨을 돌린다. 아내 주명선 씨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밤새 운전하느라 무거워진 눈꺼풀을 붙인다. 그러나 버스에서 자는 잠이 편할 리 없다. 3시간 정도 눈을 붙인 이 대표는 다시 바빠진다.
“오늘 밤에는 고흥으로 내려가야해. 주꾸미 출조. 예약 확인하고, 손님들에게 일일이 시간표를 문자로 보내야 해.”
그리고 나서도 다음 출조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버스 안을 정리한다. 꾼들이 배 위에서 한창 손맛을 보고 있을 시간, 이 대표의 시간도 바쁘게 흘러간다. 그러면서 최상용 돌핀마린호 선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조황이 어떤지 확인하는 걸 잊지 않는다.

조황정보에 예민한 건 ‘숙명’

“예? 잘 안나온다고요? 어제 쿨러 채웠다는 포인트에서도 거의 몰황이라고요?”
오늘은 조과가 신통찮은 모양이다. 이 대표의 얼굴이 굳어진다.
“나올만한 곳을 다 뒤져서라도 마릿수를 채워야 해요. 철수 시각을 좀 연장하더라도….”
최상용 선상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선장 역시 애가 타겠지만 출조점 입장에서도 조황이 안 좋으면 가시방석이야. 죄 지은 것도 아닌데, 고기 안 낚이는 게 괜히 미안해지는 거지.”
이기선 대표는 이런 걸 출조회사 대표의 숙명이라고 말한다.
그의 바람이 바다에 닿았던지 이날 돌핀마린호는 철수 2시간 전에 마릿수 입질을 받았고, 이기선 피싱클럽 손님들도 대부분 막판에 쿨러를 채울 수 있었다.
“조과가 좋으면 철수할 때 버스 분위기가 좋아. 그 반대일 때는 마치 장례식 영구차 같은 분위기가 되지.”
가는 날마다 늘 호황일 수는 없겠지만 ‘이기선 피싱클럽 버스를 타면 절대 꽝치지는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이 대표의 마음이다. 그의 이런 노력은 1년 반이 지난 지금, 제법 입소문이 나서 단골 꾼들이 꽤 늘었다. 
이기선 피싱클럽은 1주일에 평균 4번 정도 출조를 한다. 주말에는 물론이고 평일에도 10여 명 이상 예약이 꾸준한 편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이렇게 자리를 잡기까지는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작년 6월 낚시기자를 그만두고 대형면허를 딴 후 버스를 살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었다. 26년 낚시기자 생활 동안 쌓아놓은 꾼들의 인맥을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김 기자도 잘 알다시피 나는 갯바위 찌낚시를 주로 취재해왔잖아. 내가 아는 사람들도 대부분 찌낚시꾼들이지.”
그래서 그의 원래 계획은 갯바위 찌낚시 전문 출조점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 현실은 냉혹하더라. 갯바위 꾼들은 웬만해서는 자신들의 단골 출조점을 바꾸지 않더라.”

개업 후 3개월 동안 수입 ‘제로(0)

이 대표는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던 꾼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고, 다양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열심히 개업 홍보를 했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그냥 반응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연락이 없었다.
“개업한 후 3개월 동안 출조 문의 전화 한 통 못받았어. 나중에는 이러다 우울증 걸리겠다 싶더라니까.”
이 대표는 ‘혹시나 내가 미쳐 받지 못한 전화가 왔었나 싶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들여다 보는 게 습관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석 달을 보내고 나니 ‘아, 이건 아니구나’싶었단다.
“그때 갯바위 출조는 포기했어. 선상 출조로 패턴을 바꾼거지.”
이 대표는 수년전부터 불기 시작한 생활낚시, 특히 바다루어낚시 붐을 그제야 인식을 한 거였다. 그때부터 조금씩 출조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대표에게 숙제가 주어졌다.
“낚시기자 생활 오래했지만 사실 바다루어낚시는 내가 잘 모르잖아.”
그때부터 이기선 대표는 손님들과 함께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시즌에 맞춰 손님들과 낚시를 하면서 바다루어낚시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출조 전문점과의 서비스 차별화도 시도했다. 낚싯대를 비롯한 다양한 낚시용품을 출조상품으로 걸고, 버스 안에는 늘 손님들을 위한 음료수를 비치했다. 공현진 출조 때는 빵과 초코바, 목장갑, 핫팩 등을 넣은 작은 지퍼백을 일일이 꾼들에게 나눠줬다.

차별화된 출조 서비스로 입소문

이런 차별화된 서비스는 꾼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이기선 피싱클럽은 개업 1년이 채 안돼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한달 수입? 괜찮은 편이야. 솔직히 낚시기자 생활할 때보다 더 벌어.”
그러면서 이 대표는 ‘대신 몸은 힘들고 고되다’고 솔직히 말한다. 1주일에 4일 이상 새벽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게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기자할 때보다 스트레스는 덜 받는 편이야. 기자 생활할 때는 원고마감 스트레스가 엄청났거든. 김 기자가 더 잘 알잖아?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 전혀 없어.”
요즘은 낚시꾼들도 많이 점잖아(?)져서 이른바 ‘진상손님’은 거의 없다고 한다. 
“낚시꾼들, 특히 이기선 피싱클럽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90% 이상 다 좋은 분들이야. 단골분들께 늘 고맙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새벽에 우리가 만났던 부천 아인스월드 주차장에 도착했다. 저녁 8시가 다 된 시각. 이 대표는 마지막 내리는 꾼들의 짐까지 세심하게 챙겨준 후 작은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하나를 나에게 내민다. 
“공현진항에 도루묵이 많이 잡혔길래, 김 기자 것도 좀 샀어.”
이기선 대표, 다시 버스에 오른다. 3시간 후 전남 고흥으로 내려가려면 집에 가서 저녁부터 먹어야 한다.
“이번 고흥 출조는 올해 마지막 주꾸미 출조가 될 거야. 좀 있으면 어구가자미 시즌인데, 그때 또 얼굴 한 번 보자고.”
집에 돌아온 나는 이 선배가 준 도루묵을 팬에 구웠고,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이때 ‘카톡’이 울린다. 먹음직한 도루묵 찌개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뜬다.
‘이제 집에 와서 도루묵 찌개로 밥 한 술 뜨네. 오늘 수고 많았네. 푹 쉬시게.’
나는 이기선 선배의 안전출조를 기원하면서 또 한 번 편안한 이기선 피싱클럽의 버스 출조를 기다린다.

저작권자 © 리빙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