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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고 일어서며 소리쳐 우는 풀들의 삶
넘어지고 일어서며 소리쳐 우는 풀들의 삶
  • 박상건 기자
  • 승인 2019.03.23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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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28 김수영,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풀’ 전문)

바람에 눕고 일어서는 풀
바람에 눕고 일어서는 풀

 

김수영 시인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대 상과대학에 입학 후 학병 징집을 피해 만주로 이주했다가 8.15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등단해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했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징집됐다가 탈출했으나 다시 남한 경찰에 체포돼 3년 만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이후 통역, 잡지사, 신문사를 전전하다가 1968년 6월 16일 고통사고로 사망했다.

1968년 5월의 작품인 ‘풀’은 그해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고 김수영 특집’으로 실렸다. ‘풀’은 ‘민족, 민중 혹은 한 개인의 끈질긴 생명력과 저항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바람’은 ‘불의나 또는 부조리’, ‘괴롭히고 억누르는 외부의 힘’, ‘독재 권력’ 등으로 해석된다. 고등학교 문학교과서 해설에서 이 시의 주제는 ‘민족이나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설정돼 있다.

이 시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엇갈렸다. 오세영 시인은 ‘풀’은 민중적이 아닌 사변적 시로 해석했다. 참여시라면 ‘바람보다 빨리 눕는 풀’은 독재 권력에 복종하는 논리라는 것이다. ‘바람’이 독재의 상징라면 ‘동풍’ 아닌 북풍, 서풍, 태풍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남호 평론가 역시 ‘현실 참여적 성격’은 도식적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신경림 시인은 ‘풀’은 1970~80년대 상황과 맞물려 민중시의 가장 보편적인 화두가 되었다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민중을 연역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자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대 권력 앞에 풀처럼 눕는 기회주의적 지식인이 바로 ‘풀’일 수 있다”면서 “공자는,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은 그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바람을 따라서 눕기 마련”이라고 했다면서 바람과 풀은 대립관계에 있지 않다.”고 해석했다.

아무튼, 나는 이 시를 읽으면 답답한 가슴이 바다처럼, 창공처럼 확, 열리는 것을 느낀다. 산등성이의 바람물결에 울어 제끼는 으악새 울음소리처럼 마음이 우렁차고 찬란해서 좋다. 거대한 파도소리가 철썩이는 것을 느낀다.

“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는 풀들의 합창소리, 그 울림이 좋다. 바람이 불면 풀잎도, 파도도 울고 싶은 대로 울고, 부서지고 싶은 대로 부서지는 게다. 마음껏 소리치고 울 수 있는 것만으로 ‘또 다른 기쁨’이다. 행복은 그렇게 내 마음이 짓는 집이다.

때로는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민초들의 절망과 눈물은 그렇게 반복된다. 그러면서 바람 한 점, 파도 한 물결에도 동화되면서 마음도 반전한다. 힘들면 힘든 대로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그렇게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물결치면 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우주의 이치이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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