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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삶들에 대한 경외감과 따뜻한 시선
길 위의 삶들에 대한 경외감과 따뜻한 시선
  • 박상건 기자
  • 승인 2018.09.11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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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 네 번째 시집, ‘활에 기대다’(반걸음, 171쪽)

정우영 시인이 8년여 만에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이시백 소설가는 새 시집 ‘활에 기대다’(반걸음, 171쪽)에 대해 “세월만큼 깊어진 공력의 소산” “사물에 대한 연민과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애틋한 눈길”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정우영시인
정우영시인

 

그 애틋한 눈길은 느림의 미학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속성인 경쟁과 속도가 배제된다. 대신 삶과 시대의 인식과 방향성에 대한 모색을 중요시한다. “발자국은 나를 떠나/저 너머로 뒷걸음쳐 갔으나,/차마 이별을 고하진 못하고 되돌아와/다시 내 발밑을 받친다./발자국이 없으면 어쩔 뻔했나../내 삶을 부양한 것은 저 수많은 발자국들.”(‘눈길-설날 아침’ 중)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는 손과 발이다.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을 때 사람들은 손과 발을 통해 신호를 보내 의사소통을 했다. 더 높은 산으로 달려가 횃불을 올렸고, 쉼 없이 길을 달리던 발은 이내 말로 진화했고 말은 현대의 기차와 항공기로 진화했다.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는 빠름과 신속성이라는 속도의 변화이지만 그 본질은 나와 너 우리 사이의 메시지 전달, 의사소통의 정확성과 진정성에 있다.

그런 의사소통 시대의 모태가 된 발. 한 발 한발 걸으면서 그것은 이내 역사가 되고 그 모습은 시대상으로 그려지고 향유하면서 다시 한 시대를 구가하는 역사로 갈무리된다. 그 여정을 뒤돌아보는 무수한 발의 역사가 뒤안길이다.

그렇게 정우영 시인의 “발자국”은 “저 너머로 뒷걸음쳐 갔으나” 다시 돌아와 “내 삶을 부양”하고 있다. 그 발을 떠받들고 살아온, 거친 길 위의 삶을 견뎌준 신발에게 보여준 시인의 눈길은 참으로 섬세하면서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평생 얼매나 무겁고 힘들었을까이./여린 몸땡이로 신통히도 젼뎠구나 싶더랑게.”(‘흰, 신’ 중).

표지
표지

 

힘들고 지친 신발의 내력과 내성은 시인 자신이면서 동시에 시인과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 이웃들이다. 그 신발이 끌고 온 것은 민초들의 발이고 발길이다. 짧은 시어와 시어 사이 행간에서 메아리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시인이 몰입한 그 길 위를 걸어온 신발에 대한 경외감은 여운을 길고 강하게 울려준다.

“안경다리가 하나 부러졌다./다른 때 같으면 먼저 여분 안경 찾았을 것이나/어쩐지 그런 생각은 안 들고/다리 부러진 안경이 짠해지는 것이다./부러진 다리와 다리 잃은 몸통/받쳐 들고 사뭇 경건해진다.”(‘달리는 무어라 부를까’ 중)

안경테라고 명명하지 않고 ‘다리’라고 표현한 순간, 삶과 은유의 기교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시력 30년 시인의 면면을 들어다보게 한다. 안경을 착용한 사람들에게 안경의 ‘부러짐’은 육신의 한축이 무너진 것과 같다. 하필, 그것이 ‘다리’라면 문어와 낙지가 다리 없이 저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짠해지는 것은 안경이 아니라 안경과 한 생애를 살아가는 시인 이녁. 사물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는 매사 그렇듯 겸손하고 경건하다.

정우영 시인은 19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가 있고, 시평에세이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 ‘시는 벅차다’를 펴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현재 신동엽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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